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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금주의 성인] 성 라파엘 귀자르 발렌시아 (6월 6일)

참 빛 사랑 2024. 6. 5. 14:26
 
성 라파엘 귀자르 발렌시아 주교. 사진=굿뉴스

라파엘 귀자르 발렌시아 성인은 멕시코 서남부 미초아칸 주(州)의 코티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11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라파엘과 그의 형제들은 가정에서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성소는 사제직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이름 안에서 삶을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891년에는 코티자에 있는 소신학교에, 1896년에는 사모라에 있는 대신학교에 들어가 23살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1905년 사모라 신학교의 영성지도 신부로 임명된 라파엘은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과 깊은 신심 안에서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1910년 일어난 멕시코 민족주의 혁명의 여파로 가톨릭교회에 대한 정부의 박해가 심해지자 이에 저항하기 위해 1911년 종교 신문을 창간했으나 혁명 세력에 의해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박해는 라파엘이 선종할 때까지 지속되었고 많은 위험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라파엘은 계속되는 체포 위험 때문에 더 이상 멕시코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15년 말까지 미국 남부 지방에 머물렀고, 그 다음 해에는 과테말라로 가서 많은 선교사를 지도했습니다. 선교사로서의 명성이 쿠바에까지 전해지면서 그곳 선교사들을 지도해 달라는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1919년 흑사병 희생자들을 위한 라파엘의 자선사업은 큰 모범이 됐습니다. 그해 11월 30일에는 쿠바 베라크루즈교구의 주교로 임명됐습니다.

멕시코 혁명이 잦아든 1920년 1월 라파엘은 자신의 교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라파엘의 주된 관심사는 사제가 될 이들을 교육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멕시코 남동부 도시 할라파에 있던 오래된 신학교가 정부에 의해 점거된 상태였습니다. 라파엘은 이 신학교를 멕시코시티로 옮겨 15년 동안 은밀히 그 기능을 유지했습니다. 이곳은 박해 기간 문을 연 유일한 신학교로, 당시 신학생 300명이 다녔습니다.

라파엘은 임종을 앞두고도 교구와 신학교를 어렵게 운영해 나갔습니다. 또 매일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그는 1938년 6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눈을 감고, 이튿날 할라파 주교좌성당에 안치됐습니다. 그의 장례 행렬에는 많은 이가 성인다운 삶을 산 라파엘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라파엘은 1995년 1월 29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 2006년 10월 15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 주교가 성인품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