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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은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몇 년 충전 시간을 제외하면 몸에서 거의 떼어놓지 않았던 웨어러블 기기가 망가진 것이다. 먹을 때도, 운동할 때도, 잠을 잘 때도 함께하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측정해주던 기계가 불현듯 사라져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가 망가진 날 그대로 잠을 설쳤다. 갑자기 망가진 기계가 걱정되기도 하고, 앞으로 수면의 질(質)은 어떻게 평가할지, 운동 강도는 어떻게 측정할지 걱정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일종의 ‘측정 강박’이었다.
대부분 현대인은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여러 조직에서는 객관화된 숫자만 신뢰할 수 있다는 신념이 팽배하다. 각종 모바일·웨어러블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개인도 ‘객관화된 숫자’를 더욱 편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잘못된 신념과 기술의 발전이 겹치면서 최근에는 성과보다 측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미국 역사학자 제리 멀러는 자신의 책 「성과지표의 배신」에서 이를 ‘측정 강박’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는 측정 강박감이 팽배한 조직에서는 어려운 일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더 나아가 본래 목적을 거부하는 현상도 관찰된다고 했다. 한 예로, 병원에서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수술을 피하는 현상이 ‘측정 강박’에 해당한다.
‘측정 강박’ 해소를 위한 선결 조건은 ‘본질에 주목할 것’이다. 병원이라면 사람을 치료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망가진 웨어러블 기기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손목시계로 대신했다. 손목에 있었던 ‘기계’의 주된 역할이 바로 시간을 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는 그저 부차적인 기능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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