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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용산본당 순례단 방문은 레삭 도드 마을의 축제였다

참 빛 사랑 2025. 3. 19. 16:06
 
 
레삭 도드 주민들이 용산본당 신자들을 환영하는 한글 현수막을 달아놓았다.


2월 16일 주일 아침, 프랑스 남부 카르카손-나르본교구 레삭 도드(Raïssac d‘’Aude) 마을. 맑고 깨끗한 성당 종소리가 평화롭고 고요한 마을의 아침을 깨웠다. 온 마을 구석구석 울려 퍼진 종소리는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온 귀한 벗들을 환영하는 팡파르였다. 한국 신자들이 2월 12~23일 프랑스 교회 순례 중 초대 조선대목구장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서울대교구 용산본당 브뤼기에르 주교 고향 방문 순례단과 레삭 도드 주민들이 브뤼기에르 주교 세례 성당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마중 나온 촌장과 서슴없이 반갑게 인사

일찌감치 마을 어귀로 마중 나온 디디에 부스케(Didier Bousquet) 촌장이 버스에서 내리는 귀한 벗들을 환한 미소로 맞았다. 마을 주민들도 손님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하나둘 마을 어귀로 나와 처음 보는 이방인들을 반겨줬다.

이날 레삭 도드를 방문한 귀한 이들은 바로 서울대교구 용산본당(주임 황응천 신부)에서 온 브뤼기에르 주교 고향 방문 순례단 31명이었다. 이들은 첫 만남인데도 오랜 형제자매를 만난 듯 서슴없이 포옹하고 뜨거운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사실 레삭 도드와 용산본당은 브뤼기에르 주교를 중심으로 연결된 벗이다. 지중해 연안 나르본(Narbonne)에서 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레삭 도드는 오드 강과 오르비유 강 사이에 자리한 포도 재배 마을로, 브뤼기에르 주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 포도밭’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소박하고 서정적인 마을이다. 용산성당에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묘소가 있다. 두 곳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요람과 무덤’인 셈이다. 이런 인연으로 날실과 씨실처럼 하나로 엮여있는 레삭 도드와 용산본당 신자들이 복되고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 교회와 프랑스 교회의 만남

한국과 프랑스 교회는 뗄 수 없는 형제 교회다. 2005년 10월 20일 브뤼기에르 주교 선종 170주기를 맞아 용산성당 내 성직자 묘역에서는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을 위한 공식 첫 미사가 봉헌됐다. 10년 뒤 이곳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청원을 공식 밝혔다. 이후 2023년 10월 12일 교황청 시성부로부터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추진에 대해 ‘장애 없음’을 승인받았다. 그리고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주교)는 2024년 12월 13일 서울대교구청에서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의 시복을 위한 예비 심사 법정을 개정했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용산본당은 현양분과를 신설하고 2016년 말부터 매일 아침 미사 후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앞에서 시복시성 기도를 바치고 있다. 또 그의 선교 정신과 성덕을 배우기 위해 교회사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다.

용산본당 신자들의 이번 방문에는 또 다른 결정적 계기가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위원장 구요비 주교와 위원들이 카르카손-나르본교구와 레삭 도드를 공식 방문한 것. 이 방문에서 카르카손-나르본교구장 브루노 발렌틴 주교(Bruno Paul Marie Valentin)와 구요비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위한 현양 운동에 연대하고, 두 교구의 교류를 확대키로 한 것이다.

발렌틴 주교는 “한국 순례자들이 프랑스 성지순례 때 카르카손과 브뤼기에르 주교 생가 마을 레삭 도드도 방문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 약속의 첫 실현으로 용산본당 순례단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과 출신 교구를 방문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두 역사적 만남 현장에 동행하게 됐다.

 
레삭 도드 촌장 부스케씨가 황응천 신부에게 브뤼기에르 주교 부모와 가족 묘지에서 퍼온 흙을 기증하고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 후손인 샹탈 애로 여사가 순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후손 샹탈 애로 여사 뛸듯이 기뻐해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용산본당 순례단의 방문은 레삭 도드 마을의 축제였다. 순례단은 먼저 브뤼기에르 주교 생가를 찾았다. 레삭 도드에서 만난 첫 번째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의 흔적이었다. 가정집이라 생가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792년 2월 12일 아버지 프랑수아와 어머니 테레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 나이가 42살이었고 그는 11번째 자녀 중 막내였다. 그는 신심 깊은 부모의 보살핌 속에 소신학교 입학 전까지 이 집에서 성장했다. 용산본당 순례단은 생가 앞에서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 기도문을 바치고 성당으로 갔다.

성당 광장에는 더 많은 주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후손인 샹탈 애로(Chantal Ayraud) 여사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구 주교를 통해 서울대교구에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붉은 수단과 십자가를 기증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샴대목구 부주교(부대목구장) 때 사용했던 것으로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돼 마카오에서 조선 선교지를 향해 떠나기 전 샴대목구로 돌려보냈던 귀중한 유품이다.

샹탈 애로 여사는 한국 순례자들을 보고 뛸 듯이 좋아했다. 그는 순례단 한 명 한 명에게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을 위해 먼 길을 와줘 너무 감사하다”면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영성을 심화시키는 기도와 현양활동에 더욱 함께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순례단과 주민들로 꽉 찬 성당

순례단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세례를 받은 뒤 첫영성체를 하고, 복사를 서며 사제성소를 키웠던 레삭 도드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성당 안은 금세 순례단과 주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주민 일부는 성당 밖에서 미사에 참여했다.

황응천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레삭 도드에서 태어나 성장하신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한국에 뿌리신 복음의 씨앗이 성장해 현재 597만 6000여 명의 신자와 5700명 넘는 사제가 사목하는 큰 교회가 됐다”며 “이곳의 신앙이 한국의 신앙이고 용산본당의 신앙”이라며 보편 교회의 연대성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너무 행복하다”면서 “이곳에서 느꼈던 행복과 기쁨을 한국에 돌아가 잘 전하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순례단,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사진 선물

부스케 촌장은 황 신부에게 브뤼기에르 주교의 부모와 가족 묘지에서 퍼온 흙을 병에 담아 기증했다. 그리고 상본과 기도 초 제작 등 고향에서 하고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사업을 소개했다. 순례단은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사진을 선물했다.

박효종(아가피토) 전 본당 사목회장은 순례단을 대표해 “한국 교회에서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가득하다”며 “다른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를 꺼릴 때 선뜻 나서 자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주교님 고향에 와서 삶의 흔적을 보니 뭉클하다”며 “용산본당 신자들은 주교님을 위해 더욱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인 레삭 도드 전경.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과 포도주로 오찬

미사 후 순례단은 마을 끝자락에 있는 공동묘지로 가서 브뤼기에르 주교 부모와 가족 묘를 참배했다. 이어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장만한 풍성한 음식과 햇포도주로 2시간 넘는 오찬을 즐겼다.

김애덕(애덕) 본당 현양분과장은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사랑은 조선 신자들이라는 한 방향으로 향했지만, 이제는 쌍방향으로 움직여 한 믿음 속에 프랑스 레삭과 용산본당 신자들이 따뜻함을 나눴다”며 “이 사랑과 희망의 움직임이 더 커지고 넓어져 시복의 기쁨으로 실현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용산본당 순례단은 전날인 2월 15일 카르카손을 방문해 브뤼기에르 주교의 모교인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자리와 사제서품식이 거행됐던 옛 주교관 자리를 둘러봤다. 또 주교좌 대성당에서 주임 조지 리유(Georges Rieux) 신부와 교구 총대리 생플리스 악파키(Simplice Akpaki) 신부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교구 방문을 공식화했다.

리길재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