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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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사도직 현장에서] 기도와 작은 기적

참 빛 사랑 2025. 3. 15. 10:42
 


지난해 어느 날, 한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아흔 살의 자매님께서 침대에 누워 아들과 통화 중이셨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쓸데없는 소리”라는 말만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수녀님과 함께 병실로 들어갔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들이 “쓸데없는 소리”만 한다며 못마땅해하셨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간병인이 할머니께서 2주 동안 변(똥)을 못 보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저는 그제야 “쓸데없는 소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할머니께서 정말 유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셨지만, 저를 손주처럼 따뜻하게 바라봐주셨습니다. 병실을 나서며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제가 변이 잘 나오도록 기도할게요.”

그날 저녁 성당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고,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할머니의 변이 잘 나오게 해주세요.” 어찌 보면 이상한 기도였지만, 진심을 담아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병실을 다시 찾았을 때, 저는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어떠세요, 좀 나아지셨나요?” 그러자 옆에 있던 간병인이 활짝 웃으며 “변이 아주 철철 나왔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병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할머니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병실에 있던 모두가 함께 기뻐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기도했을 뿐인데, 그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자신의 묵주를 건네주셨습니다.

묵주를 손에 쥐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소리로 들릴지라도, 진심 어린 기도는 하느님 은총을 전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병실을 나오며 저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모든 이들이 작은 기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용수 신부 (수원교구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