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영성생활

고체 교회, 액체 사회 현대인들의 영적 굶주림 채워줄 수 없다

참 빛 사랑 2024. 8. 22. 17:05
 
고체 교회로 머물 것인가, 액체 교회로 나아갈 것인가. 액체 현대문화를 외면하는 ‘고체 교회’로는 액체 사회 현대인들의 영적 굶주림을 채워줄 수 없다. OSV

이탈리아 작가 아고스티노 트라이니의 「물 아저씨는 변신쟁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물 아저씨는 가끔 몸집이 커지기도 하고, 또 잠잠하기도 사나워지기도 해서 조심하라고 한다. 물 아저씨는 햇볕을 쬐어주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찬 공기를 만나면 작은 물방울로 변해 구름이 된다.

물은 수시로 변신하고 도무지 가만히 있지 않고 늘 움직이며 이동한다. 물에 대한 과학상식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흥미로운 그림책이다. 정말 그렇다. 물이란 액체는 수시로 변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다. 맛도 형태도 색도 없는 물은 설탕을 넣으면 단맛, 소금을 넣으면 짠맛을 낸다. 컵에 넣으면 물컵, 통에 넣으면 물통이 된다. 그릇의 형태에 따라 동그라미도 되고 네모도 된다. 생태환경에 따라 고요하기도 출렁이기도 순식간에 잡아먹을 듯 덮치기도 한다. 액체는 경계 없이 흐르고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한다. 불안한 감정은 절대 한 곳에 머물 수 없다. 출렁이고 넘치고 물방울이 되어 순식간에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바우만은 이러한 불안사회를 ‘액체 현대’라고 한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고체 근대에서 불확실하고 우연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액체 현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액체 사회(liquid society)’는 흘러가는 물처럼 경계가 없다. K-팝이 한류(韓流)라는 강력한 흐름을 타고 세계의 거대한 담장을 무너뜨리듯이 다양한 분야에서의 액체 한류가 세상 곳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액체사회다. 흐르고 움직이며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회다. 자고 나면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기존의 것과 새것의 구분이 어려워 서로 융화되고 경계가 모호하다.

‘이성’을 강조했던 고대나 내면세계와 구원을 추구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중세는 계획적이고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했다.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한 근대와 현대는 ‘이성’에 대한 회의와 반발로 인해 개인 중심의 신념과 사고가 강화되고 ‘불안의 시대’에 들어선다. 무엇보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이 해체되고, 전통적인 신념과 가치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새 세상을 더 이상 품을 수가 없다. 이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마저 무너지는 위협을 받고 있다. 영화나 소설이 상상하는 미래사회의 풍경에는 기계가 사람 같고 사람이 기계 같은 세상을 그려낸다.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견고했던 담장은 하나 둘 무너지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액체 교회(Liquid Church)」의 저자인 피터 워드(Peter Ward)는 교회를 고체와 액체로 분류한다. 고체 교회는 움직이지 않는 교회 건물이나 교회의 공식적인 행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각 신심단체와 미사 전례 등을 의미한다. 즉 전통적인 형식 안에서 한자리에 모여 하느님을 체험하는 장을 ‘고체 교회’라고 한다.

‘액체 교회’는 비공식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개인이나 집단 간의 소통으로 서로를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너와 나, 우리가 있는 ‘그곳’이다. 변하기 쉽게 움직이는 유동성과 융통성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존재하는 액체 교회다. 워드는 영국이나 미국 교회의 예를 들면서 고체 교회가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은 영적으로 굶주리면서도 교회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영적인 가치를 찾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유동성이 없는 고체 교회에 나가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나마 교회 전례에 참여하는 젊은이들도 월요일이 되어 자기 일터로 가면 다시금 그 집단의 믿음과 행동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를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액체 현대문화를 외면하는 고체 교회로는 액체 사회의 현대인들의 영적 굶주림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은 변신쟁이들의 세상이다. ‘1인 n역의 시대’라고 외치며 수많은 ‘부캐’를 거닐며 변신을 즐기는 세상이다. 변신쟁이 액체는 기체가 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드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확장하여 넓혀가는 기체는 바로 액체가 꿈꾸는 또 하나의 변신이다.

“길을 나서라!”, “변방으로 가라!”, “책상을 팔고 거리로 나가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외침은 변신쟁이 액체 교회로서의 선교 소명을 다하라는 당부일 것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물은 맛이 없어서 맛을 낼 수 있고 색이 없어서 색도 낼 수 있으며 형태가 없어서 형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밥에 넣으면 밥이 되고 라면에 넣으면 라면이 되고 묵에 넣으면 묵이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바로 이러한 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성철 스님의 말씀인데요. 하지만 어디까지 물이고 어디까지 산인지 애매하지요. 물인 듯 산이고 산인 듯 물인 것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의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네모에 넣으면 네모가 되고 세모에 넣으면 세모가 되는 늘 변신하는 물, 이러한 액체의 속성이야말로 빛의 속도처럼 움직이며 변신하는 디지털 세상과 함께할 수 있고 변신을 즐기는 세대들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또 결국 변할 수 없는 진실은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는 건데요. 변방으로, 거리로, 길을 나서며 사랑을 나누는 ‘그곳’, 바로 거기에 하느님이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