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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행진’ 조선희 신부, 홍천 지역에 신앙의 싹 틔운 ‘복음의 사도’

참 빛 사랑 2021. 8. 8. 20:23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중부지구의 신앙 전파와 선교사’ 심포지엄

 

▲ 춘천교구 중부지구 복음의 사도였던 조선희 신부가 홍천성당을 배경으로 신자들과 사진을 찍은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6ㆍ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앙의 싹을 틔웠던 푸른 눈의 선교사 조선희(필립보, 성골롬반외방선교회, 1915~2005) 신부. 1940년 한국에 입국해 일본군 포로로 연금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금의 춘천교구 홍천 지역 등 중부지구의 사도로 활동하며 복음을 전파한 조 신부의 생애가 재조명됐다.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소장 신정호 신부)는 7월 18일 ‘춘천교구 중부지구의 신앙 전파와 선교사’를 주제로 제11회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조 신부의 업적을 다시금 기렸다. 아울러 홍천 지역에 전파된 교회사도 되돌아봤다. 심포지엄은 춘천교구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춘천교구 가톨릭회관 관장 신호철 신부는 발제를 통해 “1939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춘천교구 홍천본당 보좌 신부로 부임해 선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조 신부님은 1941년 일본군에 끌려가 연금되고, 1950년 또다시 인민군의 포로로 잡혀 ‘죽음의 행진’을 겪었다”며 “이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구제하며 복음을 전한 ‘중부지구의 사도’셨다”고 전했다.

조 신부는 홍천성당을 건립하고 레지오 마리애를 본당에 처음 도입하며 드넓은 홍천 일대에 수많은 공소를 설립했다. 양 떼를 돌보는 사목과 함께 가난한 이들, 나환자들을 도왔고, 병원 설립까지 도우며 지역민을 사랑으로 돌봤다. 조 신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몸소 겪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 인간 생명의 고귀함과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영성으로 발전시켰다. 1990년 은퇴 후에는 기도의 집을 지어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장소로 만들며 몸소 기도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신 신부는 “전후 조 신부를 물심양면 도왔던 임숙녀 보나 전교회장과 총격으로 하반신을 잃은 상이군인이었던 연규필 안드레아 공소회장의 힘으로 공소가 세워지는 등 이들은 중부지구 복음 선포의 트로이카였다”면서 “성인 같았던 조 신부님의 노력과 훌륭한 평신도들의 조력으로 우리 교회가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교구 교회사연구소 이원희(요셉피나) 상임연구원은 ‘문헌자료를 통해 본 홍천 지역의 신앙전파’란 주제 발표에서 「뮈텔 주교 일기」부터 「병인치명사적」, 「서울교구 연보」, 사제들의 서한, 풍수원본당 세례 대장 등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에 이르는 방대한 교회 관련 문헌을 분석해 교우들의 신앙생활과 교세 흐름을 돌아봤다.

이 연구원은 “1880년대 초 1곳에 불과했던 홍천의 공소는 1920년대로 가면서 9곳으로 증가했으며, 교우 숫자도 초기 60여 명에서 1924년에는 500여 명에 이르렀다”며 “풍수원본당 세례 대장에 드러난 홍천군 서석면 검산리 일대는 사제 방문으로 1903년 세례자 수가 5명에서 1939년에는 48명으로 늘어나는 등 계속 증가했다”고 전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인사말에서 “개인의 신앙이 올바로 서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동체 신앙이 튼튼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삶을 살았던 신앙의 주인공들을 늘 살펴봐야 한다”면서 “특별히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기간 신앙을 점검하고, 주님 뜻에 맞는 신앙인으로 살고자 재정비해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