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유리화
“사제는 얼마나 위대합니까! 사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죽고 말 것입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는 사제에게 주어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은총과 책임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늘의 보물창고 열쇠를 가진 이가 사제들”이라며 영혼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사제라고 했다. 이는 성직자 중심주의나 사제 엘리트 의식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주님과 주님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불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극히 일부의 사제가 하느님께 불충한 모습을 보이면 세상은 교회를 싸잡아 비판한다. 침소봉대식 주장으로 반(反)교권주의를 부추긴다. 이럴 때는 하느님과 인간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던 목자의 가르침과 모범을 되새기며 내적 쇄신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2009년 성 비안네 신부 선종 150주년을 맞아 ‘사제의 해’를 선포하고 쇄신을 부르짖은 배경이기도 하다.
비안네 신부는 오늘을 사는 사제들에게 거듭 충고한다. 말이 아니라 삶의 증언을 통해서다. “우리 본당 신부에게 가장 안타까운 일은 우리 영혼의 열의가 식어간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리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 아르스는 당시 형편없는 곳이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여파로 주민 230여 명의 신앙은 식을 대로 식어 있었다. 주교가 그를 보내면서 “그곳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귀띔했을 정도다. 그가 숨을 거두기 며칠 전까지 하루 16시간씩 고해소에 들어가 영혼을 구하는 열의를 간직할 수 있었던 힘은 기도에서 나왔다. 그는 “성당을 자기 거처로 삼고, 해 뜨기 전에 성당에 들어가서 저녁 삼종기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전기(傳記) 작가는 말한다.
그는 사제 생활의 열정은 전적으로 미사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다. 다른 어느 것보다 미사 성제에 집중했다. 신학생 시절 교수들로부터 몇 번이나 자퇴를 권유받은 둔재(鈍才)였던 그는 복음을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강론을 통째로 외웠다. 미사 중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한 얼굴로 감실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신자들을 말없이 감화시켰다. 그는 사제들을 향해 말한다.
“사제가 해이해지는 이유는 미사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사를 틀에 박힌 듯이 거행하는 사제야말로 얼마나 가엾습니까.”
그의 삶의 증언 가운데 가난과 겸손은 후배 사제들에게 ‘죽비’ 내리치는 소리나 다름없다. 한 벌밖에 없는 그의 수단은 닳고 해져 푸른색이 감돌았다. 구두는 한 번도 솔을 댄 일이 없어 벌겋게 퇴색됐다. 모임에 가면 동료 사제들이 창피해 했다. 그는 침대 매트리스를 빼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는 짚을 깔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락함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르스에서 41년 동안 사목한 뒤 그토록 갈망하던 잠에 들었다. 1925년 성인 반열에 오르고, 4년 뒤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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