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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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순수한 사랑

참 빛 사랑 2014. 10. 24. 14:09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 기도와 함께 닦아야 할 덕행① 순수한 사랑

▲ 성녀가 권한 ‘영신적 사랑’은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폭넓은 사랑이자 자신을 넘어서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그림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기도에 동반되어야 할 덕행들

성녀 데레사는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기도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덕행을 닦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진보를 위한 합당한 삶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평소에 신덕, 망덕, 애덕의 삶을 소홀히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기도를 한다고 잘 될 리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 제대로 기도에 몰입할 수도 없습니다. 이기적인 사람, 세속에 집착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사람은 아무리 기도를 해도 커다란 진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의 험담을 일삼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뒤에서 남을 욕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기도하러 성당에 가기 전에 행실부터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기도 그 자체만으로 언급될 수 없고 그에 합당한 덕행이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


성녀 데레사는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순수한 사랑’을 지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기도의 진보를 염려한다면, 그 이전에 먼저 주위 사람들과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 참된 영적 우정은 ‘너’와 ‘나’ 사이에 언제나 ‘그리스도’의 자리를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너’와 더불어서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지향합니다. 따라서 세속에서의 사랑이 오직 ‘너’와 ‘나’만의 배타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영적 세계에서 진정한 ‘영적 우정’은 ‘너’와 ‘나’ 사이에 ‘그리스도’의 자리를 마련하는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함께 그리스도를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 기도에 뜻을 둔 사람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영적 우정’입니다.


기도의 장애물인 감각적 사랑

성녀는 사랑을 ‘감각적 사랑’과 ‘영신적 사랑’으로 나눴습니다. ‘감각적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선 개인적으로 보면, 그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애착함으로써 주님께 드려야 할 마음의 자리를 빼앗기게 하는 것이 감각적 사랑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각자 자신의 신분에 맞는 ‘정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결’은 단순히 육체적인 동정만을 지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이며 지향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결’은 ‘나누임 없는 마음’, ‘나누임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 누구 때문에 하느님께 가야 할 내 사랑이, 내 마음이 갈라져 있다면 정결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경계한 감각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감각적 사랑이 공동체 차원으로 확산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파벌적 사랑일 것입니다. 성녀는 이를 빗대어 ‘유다의 그림자’라고 할 만큼 증오했습니다. 나와 기질이 맞고 코드가 맞고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고 챙겨주는 끼리끼리의 사랑, 그런 ‘이너 서클’에 들지 못한 사람은 소외시키고 배제하고 적수로 돌리고 심지어 없는 말을 만들어내서 모함하고 매장하는 것, 나와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만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고 우리 중심으로 공동체가 재편되길 바라는 것, 이 모두가 감각적인 사랑이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녀는 공동체 안에서 이런 질 나쁜 사랑이 커갈수록 서로 불신, 오해,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공동체를 파멸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런 일이 있거든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다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기도의 진보를 돕는 영신적 사랑

이와 달리, 성녀가 권했던 ‘영신적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한 사람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폭넓은 사랑이자 자신을 넘어서는 이타적인 사랑이고 헌헌장부(軒軒丈夫)의 사랑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진보하는 것을 크게 기뻐합니다. 또한 이 사랑은 사랑하는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召命)을 실현하길 바라며 그래서 그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그가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자신을 실현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그가 성인(聖人)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오직 이 일을 위해 혼신을 다해 기도하고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성화를 위해 무엇이 좋은가, 그가 닦는 덕에 무엇이 보탬이 되는가 하는 데 관심을 가지며, 그가 역경 중에 있을 때에는 인내를 갖고 그 상황을 잘 넘어섬으로써 공로를 쌓도록 격려하고 기도로 힘이 되어줍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런 참사랑을 손수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그렇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사랑하고 함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영신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진단하려면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은 ‘감각적 사랑’과 ‘영신적 사랑’ 둘 중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   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 하느님, 날 구하소서.
◎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알렐루야.

찬미가

동녘에 아침해가 솟아오르니
주님께 아침기도 바치나이다
오늘도 말과행동 지켜주시고
온갖악 피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혀 삼가도록 보살피시어
시비에 말려들지 않게하시고
우리눈 조심토록 지켜주시어
헛됨에 빠져들지 않게하소서

우리맘 깨끗하게 씻어주시며
못나고 우둔한맘 몰아내소서
인간의 교만함을 부숴주시고
음식도 절제하게 인도하소서

오늘의 하루생활 마친다음에
또다시 어둔밤이 찾아들어도
용감히 속세유혹 끊어버리고
주님께 영광찬미 바쳐드리세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드리세
오로지 한분이신 독생성자와
위로자 성령께도 언제나항상
세세에 무궁토록 영광드리세. 아멘.

 

내적 이탈, 성성을 향한 여정의 강력한 원동력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34. 기도와 함께 닦아야 할 덕행 ② ‘이탈’의 정신

▲ 기도를 위한 필수 덕목인 이탈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이탈에 있다.



기도를 위한 필수 덕목인 ‘이탈’의 정신

성녀 데레사가 쓴 「완덕의 길」은 자신의 제자 수녀들을 비롯해 당시 많은 신자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누기 위해서 만든 일종의 ‘기도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보면 처음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기도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도를 제대로 하기 위한 올바른 삶의 준비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녀는 기도가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기도를 위해 닦아야 할 필수적인 덕목 중에 하나로 ‘이탈’(離脫)의 정신을 들 수 있습니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을 내 삶 안에,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완덕의 길」 8장 전체를 할애해서 이 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이탈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본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성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합시다. “이탈…이것만 철저히 지키는 날엔 모든 것은 그 안에 다 있는 것입니다”(「완덕의 길」 8,1). 그보다 조금 뒤에서 성녀는 이렇게 힘주어 가르칩니다. “정을 떼지 않은 자, 건전하지 못한 자로 자처하여야 할 것이니 그는 영신의 자유를 가질 수 없고 오롯한 평화를 지닐 수 없는, 의사가 필요한 사람일 것입니다”(「완덕의 길」 8,3). 또한 성녀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조심을 게을리하여 내 뜻을 끊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일을 살피지 않으면 별의별 일들이 생겨서 영신의 거룩한 자유를 박탈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진토와 납덩이의 짐에 눌려 하느님께로 날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완덕의 길」 10,1).



천상으로 데려갈 영적 날개인 거룩한 자유


성녀 데레사가 말하는 이탈은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뉩니다. ①“어떤 것이든 피조물에게는 우리 자신을 건네지 않는 것”, ②“오직 하느님만을 온전히 끌어안는 것”, ③“우리 자신을 남김없이 전부이신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천상을 향해 날아가려는 영혼에게 이탈의 덕이 부족한 것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성(聖性)의 고지에 이르려면 ‘거룩한 자유’가 필요하고 이 자유를 통해 날갯짓해야 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나뭇가지나 봉우리에 앉아 세상이 주는 하찮은 먹이를 받아먹으며 즐기기만 한다면 날갯죽지의 힘도 빠지고 날아야 할 이유도 잊어버려 아예 날려고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 같은 경우, 욕구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빨대상어가 배에 들러붙어 있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나아가려 해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또 아무리 가는 실일지라도 새가 실에 묶여 있으면 결코 날아오를 수 없으니 절대 그 어느 것에도 애착하지 말고 매이지도 말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집착하고 매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세상 것에, 사람들에게 마음을 뺏긴 내게 탓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세상 어느 것에도 빼앗기지 않도록 늘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야 합니다. 성녀 데레사는 그러기 위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효과적인 방법을 권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은 일체가 허무(虛無)요 모든 것이 무상(無常)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것입니다. 덧없는 것에서 정을 떼고, 다함이 없는 것에 정을 두는 일입니다. 이것이 변변치 못한 방법 같을지 몰라도 실천해나가다 보면 영혼을 아주 굳세게 만들 것입니다. 작고 작은 것에라도 행여 정을 붙일까 조심을 하고 힘써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십시오”(「완덕의 길」 10,2).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이탈


성녀 데레사는 이탈을 ‘외적 이탈’과 ‘내적 이탈’로 구분했습니다. ‘외적 이탈’은 제반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포기와 단절을 말하며 마음속까지 완전히 이탈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성녀는 가르칩니다(「완덕의 길」 13,7). 그러나 이보다 성녀는 근본적으로 영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내적 이탈’을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외적 이탈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내적 자세이자 성성을 향한 여정의 강력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탈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을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첩첩산중에서 면벽 수행을 한다 한들,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떠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수고는 허사일 뿐입니다. 세속의 온갖 허영과 욕심, 사라져 없어질 것들에 대한 애착을 끌어들이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도둑 중에 가장 무서운 도둑이 집안 도둑이며 그것이 자신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봉쇄 수도원에 살아도 그 누구보다 세속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세속 한가운데 살아도 자신으로부터 이탈하고 자신을 넘어선 사람, 주님만을 바라보며 마음의 봉쇄를 지키고 거룩한 자유를 키우는 사람은 성성의 길에서 확실한 도약대를 마련한 사람으로 그는 완덕의 산 정상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천상으로 날아가게 해 줄 영적 날개인 거룩한 자유가 꺾이지 않도록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보호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