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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이겨내고 조선까지… 김대건 신부의 절박한 기도와 마음 생생히

참 빛 사랑 2021. 3. 17. 22:29

제주교구,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재현 미사

▲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가운데 왼쪽)와 신자들이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배를 타고 차귀도로 향하고 있다. 신자들은 이날 당시 김대건 신부 일행이 입었을 복장으로 참여해 의미를 더 했다.

▲ 용수성지 전경.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왼쪽)과 기념관(오른쪽)이 보인다. 입구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이 순례객들을 맞는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가 차귀도 갯바위에서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재현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왼쪽은 사무처장 현요안 신부





김대건 신부 일행을 태운 라파엘호가 거친 물살을 가르자 제주의 푸른 바다가 하얗게 부서진다. 삼다도(三多島)답게 제주의 바람은 거세다. 바람이 몰고 온 파도에 배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작은 파도에도 배는 좌우로 심하게 요동친다. 바다는 소용돌이치며 언제라도 라파엘호를 집어삼킬 기세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라파엘호에게 바다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신앙의 돛을 올린 라파엘호는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상해를 떠난 지 28일 만인 1845년 9월 28일. 라파엘호는 마침내 제주에 닿았다.

제주교구(교구장 문창우 주교)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13일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과 제주 표착 기념관에서 행사를 진행한 후 차귀도에서 문창우 주교 주례로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재현 미사를 봉헌했다. 1845년 9월 28일의 김대건 신부를 2021년 3월 13일 제주에서 만났다.



차귀도 가는 길

13일 아침이 밝았다. 행사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제주의 푸른 하늘과 바다가 멋스럽게 어울렸다. 용수포구에서 저 멀리 차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본 행사 시작 전 예행연습을 위해 용수포구에서 배를 타고 차귀도로 향했다. 포구 쪽 바다는 잔잔했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바다는 갑자기 얼굴을 바꿨다. 강한 바람이 몰고 온 파도가 배를 크게 흔들었다. 배에 부딪힌 파도는 배를 타고 넘어들어왔다. 배를 붙잡은 사람들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력으로 움직이는 지금의 배도 파도 앞에 힘을 쓰기 어려운데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탔던 무동력 목선(범선)인 라파엘호는 폭풍 속에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으리라. 당시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탔던 라파엘호를 생각하며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배는 차귀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귀도는 예로부터 대나무가 많아 대섬 또는 죽도로 불렸다. 1970년대 말까지 7가구가 보리, 콩, 참외, 수박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연자방아, 빗물 저장시설 등만이 남아있다.



제주와 김대건 신부, 그리고 라파엘호

김대건 신부 일행의 제주 표착지와 라파엘호에 대한 조사ㆍ연구는 1998년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조사ㆍ연구결과 김대건 신부 일행이 표류하다가 처음 발견한 곳이 지금의 차귀도였고 라파엘호가 정박한 곳은 용수리 포구였다. 이에 따라 이곳 일대는 김대건 신부 일행이 표착해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한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한 사적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교구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제주도 표착지에 관한 연구」 논문과 「라파엘호 고증 복원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간했다.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바랑 교장 신부에게 보낸 1845년 10월 29일 자 서한에 따라 라파엘호를 살펴보면 라파엘호는 길이 25자, 너비 9자, 깊이 7자의 크기에 아주 높은 돛대 2개, 가마니로 이은 돛 두 폭이 달려 있고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널판은 나무못으로 서로 이었으며 타마유나 틈막기도 없었다. 뱃머리는 선창까지 열려 있는데 이것이 배의 1/3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권양기 끝에 나무로 된 닻이 하나 있었다. 라파엘호 갑판 일부분은 자리로 돼 있고 일부분은 아무런 고정기구로 고정되지 않은 채 그저 잇대어 깔아 놓은 나무판자로 돼 있으며 갑판 위에는 배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3개 있고 하늘이 흐리면 닻을 내리고 배에 짚으로 된 덮개를 덮을 수 있도록 했다.



하느님의 섭리

이날 행사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에 마련된 김대건 신부 유해공경실에서 김대건 신부 유해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신자들은 기념관 앞에 마련된 라파엘호 위로 올라가 김대건 신부의 순례 여정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삶을 묵상한 후 배를 타고 차귀도로 들어가 차귀도 정상에서 십자가 경배 예식을 했다.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재현 미사는 차귀도 갯바위에서 봉헌됐다. 신자들은 당시 김대건 신부 일행이 입었을 복장으로 미사에 참여해 의미를 더 했다. 문창우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이곳 일대는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하느님의 섭리로 풍랑을 이겨내고 포교지 조선에 도착해 처음으로 미사와 기도를 봉헌한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한 사적지”라며 “김대건 신부의 항해는 하느님의 섭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나의 기적과 같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신앙인에게 하나의 체험이라는 것은 늘 하느님의 크신 섭리 안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문 주교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하느님 섭리의 순간을 재현하고자 오늘 이렇게 모였다”며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런 자리마다 하느님은 늘 우리 가까이 계셨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진리의 길, 사랑의 길, 희망을 길을 걸어가도록 초대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 모두 하느님 섭리의 주인공처럼, 김대건 신부처럼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되길 함께 기도하고 다짐하자”고 했다.

미사에 참여한 임선영(가타리나, 제주 광양본당)씨는 “날씨가 좋은데도 이렇게 파도가 센데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폭풍 속에서 파도를 견디면서 상해에서 차귀도까지 왔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문창우 주교 “신앙에 흠뻑 젖는 한 해”

문창우 주교는 차귀도로 가는 배 안에서 차귀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문 주교는 “신앙의 소중함, 김대건 신부님이 폭풍우를 만나 가졌던 절박한 기도의 마음들, 성모님의 전구 안에서 배를 타면서 함께 있었던 분들의 모습이 스쳐지나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건 신부님을 느낄 수 있는 현장에서 미사까지 봉헌하게 됐는데 김대건 신부님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재현 미사에 대해 문 주교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섭리를 이뤄내는 것이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의 첫 사제이자 순교자라고 하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며 “신앙의 후손으로서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면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또 하나의 김대건 신부님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 신자들이 우리나라의 여러 김대건 순례길을 걷고 체험하면서 신앙에 흠뻑 젖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 주교는 “오늘날 김대건 신부님을 통해 예수님께서 한국 교회에 바라시는 것은 신앙의 기쁨 속에서 한형제가 돼가는 모습”이라며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우리의 신앙도 쇄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