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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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종합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 선종

참 빛 사랑 2021. 3. 17. 22:21

제8대 대구대교구장 21년 사목… 17일 장례 미사 봉헌

▲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가 14일 대구 계산주교좌대성당에 마련된 이문희 대주교 빈소에서 추모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짧은 노을을 좋아했던 한국 가톨릭교회의 어른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애인’(如己愛人)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레위 19,18)는 말씀을 한평생 실천하고 몸소 가르쳤던 제8대 대구대교구장 이문희(바오로) 대주교가 14일 오전 1시 20분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6세.

이 대주교는 “한 일이 없는데 받은 것이 너무 많다.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이 대주교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사목 모토처럼 복음대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라 여기며 한평생 사제로서, 주교로서 헌신했다.

이 대주교를 교구 사목국장 시절부터 보좌해온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당신은 한 일이 없으시다고 하지만 이 대주교님께서 이루신 일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면서 “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끝까지 실천하신 분이시니 하느님께서 그 노고를 갚아주실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문희 대주교의 십자가는 참으로 무거웠다. 프랑스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사제품을 받아 한국 교회에 서품 동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버지가 정치인이어서 사회에선 보수 인사로 분류됐다. 엄한 교구장 밑에서 14년을 보좌 주교로 생활했고, 21년을 교구장 주교로 사목했다.

이 대주교는 1972년 우리나라 최연소 주교가 됐고, 1986년 대주교좌를 계승했다. 이때 이 대주교는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보좌 주교로서 교구장 승계, 정년 규정에 의한 최초 승계, 선임 서정길 대주교의 퇴임과 동시에 착좌라는 첫 역사를 썼다.

신학생 시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물결을 몸소 유럽 교회 안에서 체험하고 돌아온 이 대주교는 사회 복음화와 교회 쇄신을 위해 사제들의 헌신과 평신도들의 참여, 사회 복지를 통한 공동선 실현에 온 힘을 쏟았다.

‘여기애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을 만큼 뜨거운 감자인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솔선해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을 추진했다. 그리고 ‘여기회’를 설립해 한일 청소년 교류에도 힘썼다.

은퇴한 다음 해 식도암 수술을 하고 10여 년 세월을 투병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병고를 벗으로 삼았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 학회’와 ‘앞산밑 북카페’ 등을 운영하고 저술 활동을 해온 이 대주교는 “이땅의 교회가 잘되도록 사랑의 힘을 더 키워가도록 힘써 달라”는 당부와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함께 만나자”는 기약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14일 오후 5시 대구 계산주교좌대성당에 마련된 이문희 대주교 빈소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 대주교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슬프지만,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과 모범을 보이셨다.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게 우리 함께 기도를 드리자”고 말했다.

대구대교구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교구 내 164개 모든 성당에 빈소를 마련하고 이 대주교를 위해 신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가톨릭평화방송과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문희 대주교의 장례 미사는 17일 오전 10시 30분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봉헌됐다. 고인의 장지는 이 대주교의 뜻에 따라 천주교 군위 묘원 성직자 묘지로 정해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