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여행 중 항상 여행지 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여한다. 여행지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낯선 느낌을 주면서도 보편 교회만이 가진 특유의 익숙함으로 편안함을 안겨준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가족 모두가 즐기는 특별한 순간이다.
이번 연말 여행은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가 목적지였는데, 이동 중 성당에 들러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이동 경로와 미사 시간을 고려한 끝에 선택한 곳은 플로리다주에 있는 ‘Incarnation Catholic Church’였다. 흥미롭게도 성당에 관한 후기에 누군가 ‘세계 최고의 가톨릭교회’란 문구를 남겨놓은 게 눈길을 끌었다. 사진을 보니 정말 작은 성당인데, 누군가 세계 최고라고 해놓으니 궁금증이 커졌다. 과연 어떤 성당이길래.
도착해 성당 안에 들어서니 어딘가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커다란 십자고상도 붙어있지 않은 작은 성당이었는데, 미사 전 많은 분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미사가 시작되자 우리 가족은 큰 혼란에 빠졌다. 신부님 복장도 어쩐지 굉장히 낯설었고, 예법이나 미사 경문, 기도문 역시 현대적 표현 대신 예스러운 말투로 진행되었다. 분명 수도 없이 다니던 미사인데, 우리 가족은 어리둥절하고 낯선 미사에 몹시 당황했다. 내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불현듯 다른 종교행사에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 미사 중임을 무릅쓰고 급하게 휴대폰으로 이곳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첫 몇 줄을 읽어보는데 ‘이 성당은 1980년 성공회 성당으로 설립되었으며’라고 쓰여 있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성공회 성당에 왔구나’ 하고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성공회 성당이 가톨릭이라는 말을 썼을 리 없는데 하고 뒷내용을 이어서 읽어보았다.
좀더 살펴보니 이곳은 정말 특별한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원래 1980년 성공회 교회로 설립되었으나, 2012년 ‘성 베드로 사도좌 개인 교구’로 정식 편입되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부가 되었다고 했다. 여전히 전통적인 성공회 전례를 기반으로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완전히 로마 가톨릭과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라고 쓰여있었다.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던 우리였지만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안심하고 미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사 중에는 낯선 표현과 의식들이 이어졌다. 굉장히 전통적인 느낌이었는데, 악기도 사용하지 않았고,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고 성호를 긋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성체를 축성할 때는 라틴어로 경문이 외워졌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미사였지만 성체 안에는 여전히 내가 아는 예수님이 계셨다. 우리 가족도 다른 모든 신자처럼 무릎을 꿇고 성체를 영했다. 매우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다.
‘세계 최고의 가톨릭교회’라는 후기가 남겨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흔히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미사가 끝나고 궁금증이 이어져 좀더 찾아보니, 성 베드로 사도좌 개인 교구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지시에 따라 성공회 전통을 따르는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돕기 위해 설립된 특별한 교구라고 했다. 그러니 이날 우연히 방문한 이 성당은 단순히 한 공동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갈라져 나간 형제들이 다시 일치를 이룬 현장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보며 교회 일치 가능성에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곳은 정말로 교회가 일치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었으며, 성령께서 일치를 이루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역시 여행 중 낯선 성당의 방문은 최고의 일정이 맞다.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이 귀한 경험에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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