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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기업

[나의 신앙 나의 기업](4) 김강희 비오 (주)가치 대표이사

참 빛 사랑 2016. 9. 26. 10:09

가장 가치 있는 보석은 가슴 속 진주인 ‘믿음’


다이아몬드와 진주 등 보석을 비롯한 귀금속류, 반지와 목걸이 등 고급 장신구류 판매업체인 (주)가치 대표이사인 김강희(비오, 71) 회장은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를 신조로 삼아 살아왔다. 이는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생을 통해 체득한 경험의 결실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은 속셈이 없습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지도 않고 욕먹는 일도 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욕먹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사는 ‘평범’ 그 자체가 실은 ‘비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이 중시하는 평범은 그의 호 ‘중산’(中山)에서도 잘 드러난다. 두드러지거나 치우치지 않고 매사에 중용을 지키는 것, 그 길은 또한 김 회장이 살아온 삶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 회장의 삶은 겉보기에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 종로의 한 귀금속상에서 1년 동안 직원으로 일하다가 ‘정보당’이라는 보석상을 차려 독립했다. 1970년대 초였다. ‘값어치’라는 뜻을 지닌 (주)가치의 전신이다.

자기 가게를 차린 청년 김강희는 열심히 일했고,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가게는 번창했다.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보석상 매장으로서는 초대형인 약 100㎡(30평) 크기의 본점을 비롯해 강남, 일산 등지에 5개 매장을 뒀다.

사업을 하면서 김 회장은 ‘일은 즐겁게 하라’를 신조로 삼았다. 일 자체가 판매업이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어서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으면 고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 회장이 즐겁게 하라는 것은 사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삶을 위해서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 그러나 일이 의무가 되면 인생은 지옥이다.’

김 회장은 서울 명동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  벽에 직접 쓴 이 글을 걸어놓고 늘 되새길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당부한다. ‘일을 즐겨라. 그러면 인생이 즐겁다.’

김 회장은 신앙인으로서도 마찬가지로 외적으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김 회장은 서울 토박이다. 이북 출신의 부모 슬하에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먼저 세례를 받은 어머니를 따라 중학교 2학년 때인 1958년에 종로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바로 복사단에서 활동했고 이어서 ‘바다의 별’이라는 학생 쁘레시디움에서 레지오 활동을 했다.

“요즈음엔 학생 레지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본당 레지오 하면 중고등학생들의 학생 쁘레시디움 아니면 노인 쁘레시디움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중앙고교)에 학생 레지오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한 친구는 사제가 됐다. 서울대교구 원로사제 박용일 신부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성당 활동은 이후 김 회장의 신앙생활에 든든한 기초가 됐다.

신앙생활에 있어 김 회장은 특히 기도의 힘을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이에게 반드시 주십니다. 주시지 않는다면, 구하는 것이 본인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A’라는 길을 가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당연히 간절히 기도도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실망하게 되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보면 그때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오히려 잘 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1979년 을지로 입구에 롯데1번가 아케이드를 열었을 때였다. 당시 바로 옆 미도파백화점(현재 롯데 영플라자)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김 회장은 목이 좋은 1번가 아케이드에 입점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어 나중에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했는데, 그게 전화위복이었다.

“당시 돌이켜보면 어떤 이끄심이 아니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런 경험을 저는 평생을 살면서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루카 11,19 공동번역) 하신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도 기도다. 첫째는 ‘매사를 감사히 여겨라’는 감사 기도이고, 그 다음에는 늘 기도하는 삶,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도 한결같이 기도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김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사와 간구, 이 두 기도가 어쩌면 김 회장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회장은 28살의 젊은 나이인 1971년에 꾸르실료 교육을 받았다(서울대교구 14차). 30살 아래는 꾸르실료 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이계중 신부(2013년 선종)가 ‘비오는 나이는 30이 안 됐지만 신앙의 나이는 그 정도를 넘는다’며 적극 추천해서 가능했다. 교육을 받은 후에는 본당의 최연소 사목위원으로 활동했다. 혜화동본당에 있을 때였다.

김 회장은 청소년 시절의 종로본당, 청년 시절의 혜화동본당을 거쳐 33살 때인 1976년에 반포본당으로 교적을 옮겼다. 반포본당이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하던 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반포본당 신자로 살고 있으니 본당의 산 증인인 셈이다. 지난해부터는 본당 총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성당 신축 기금을 비롯해 크고 작은 교회 일에, 또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개인적인 문제여서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닫는 김 회장. 그는 그보다 자신이 묵상하는 신앙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참 신앙을 가진 이는 늘 평화롭다’는 것이다.

“평화롭다는 것은 괴로움이 전혀 없고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라고 봅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제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이뤄지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이야말로 참 신앙인이라고 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