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평화 기원, 방북 희망
분단국 한반도의 아픔 알고
꾸준히 방북 의사 밝혀
한국 교회에 준 선물
2027 WYD 개최지로 서울 선정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 전해
“저도 언제나 생각하고 기도하는 한반도의 평화라는 꿈을 우리 함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에게 맡겨드립시다.”
‘한반도 평화’와 ‘김대건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교회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한 두 단어가 포함된 압축적인 문장이다.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한 지 177주년이 되던 2023년 9월 16일 바티칸을 찾은 한국 신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동양인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을 앞두고서였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당부했다. 성인을 본받아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사도’가 되는 성소를 재발견하길 바란다고.
앞서 교황은 그해 6월 22일에도 평화의 ‘예언자’가 되도록 모든 한국인을 격려했다. 한국 주교단이 봉헌한 ‘한국 전쟁 정전 협정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 전한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나는 북한에 갈 것이다’
‘평화의 사도’인 교황은 피를 나눈 형제인 한민족이 갈라져 대립하는 한반도 상황을 늘 안타까워했다. 앞서 2015년 미국과 쿠바 간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바 있는 교황이었다. ‘다리를 놓는 사람’(Pontifex)으로서 남북한 화해와 일치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북한에 방문하고 싶다’고 여러 번 밝힌 이유였다.
대표적 장면은 2018년 10월 18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처음 교황을 예방했을 때였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자 교황은 답했다.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 이탈리아어로 ‘나는 갈 것이다’란 뜻이었다.
이 한마디에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가 들썩였다. 교황청과 북한 관계도 급진전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면서 남북관계도 경색 국면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하면서 방북 계획은 백지화됐다. 그럼에도 교황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방북 의지를 드러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2023년 7월 22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교황님은 ‘북한이 초청하면 거절하지 않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에 가고 싶으니 날 꼭 초청해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70년 동안 서로 갈라져 왕래도 없이 지내는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교황님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 탄생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동안 한국 교회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경사가 났다. 유흥식 추기경이 ‘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이 된 일도 그중 하나다. 교황은 2021년 6월 11일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현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 대주교로 승품시켰다. 그리고 장관 임명 11개월 만인 이듬해 5월 29일 유 대주교는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성직자부는 교구 성직자인 사제·부제 개인과 그들의 사목 교역과 효과적인 수행에 필요한 재원 관련 업무 일체를 다루면서 주교들에게 적절한 도움도 제공하는 부서다.
이런 요직을 한국 교회 출신이, 그것도 2021년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이자 두 번째 사제 가경자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던 해에 처음 맡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우리나라의 큰 경사이며 경이로운 축복”이라며 “전국 교우들의 깊은 순교신심과 우리나라 복음화 사업이 크게 신장된 결과”라고 평했다.
대전교구 솔뫼성지는 교황과 김대건 신부 사이 ‘연결고리’다. 2014년 8월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은 솔뫼성지에 자리한 김대건 신부 생가를 찾아 헌화하고 기도했다. 이때 제6차 아시아청년대회(AYD)를 주최하며 방한을 이끈 주역이 당시 대전교구장인 유 추기경이었다.
베드로 대성전에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
교황은 2018년 3월 19일 즉위 5주년을 맞아 낸 세 번째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서 김대건 신부를 언급했다. 복음을 영웅적으로 실천했거나 모든 구성원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해 공동체 전체가 시성된 대표 사례로 ‘한국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을 소개한 것이다.
김 신부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이어져 3년 뒤 8월 21일 탄생 200주년 미사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어’로 거행됐다. 교황은 축하 메시지를 통해 김대건 신부를 ‘영웅적 신앙의 모범적 증인이며, 한국 백성들이 박해와 고통을 겪었던 어려운 시기에도 지칠 줄 모르고 복음을 전하던 사도’라고 표현했다. 이어 “동료들과 함께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미움을 이기기 때문에, 선이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기쁜 희망으로 드러내 보여주셨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최빈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에 동참해 준 한국 교회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절정은 2023년 9월 한국인 조각가가 빚은 김대건 신부 성상이 바티칸에서 우뚝 선 순간이었다. 유 추기경과 한국 교회 대표로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이 잇따라 성수를 뿌리며 성상을 축복했다. 김 신부가 1846년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지 177년 만에 누리게 된 영예였다. 아울러 교황은 2016년 김 신부의 신학교 동기인 ‘땀의 증거자’ 최양업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하기도 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교회에 선물한 또 다른 기쁜 소식은 2023년 여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나왔다. 제37차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파견 미사 중 “2027년 차기 대회 개최지는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1995년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다. 교황은 “WYD 장소가 유럽의 서쪽 끝에서 극동으로 이동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일치를 향한 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표징”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듬해 11월 24일 삼종기도 때 WYD를 준비하는 한국 청년 대표 2명을 사도궁 서재 창가에 세워 소개했다. 이날 포르투갈 청년으로부터 WYD 상징물(십자가와 성모 성화)을 인계받은 주인공들이었다. 교황은 전달식 거행에 앞서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용기를 내세요! 이 상징물들이 지나는 곳마다 하느님의 불굴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민족들 간의 형제애가 피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특히 분쟁과 전쟁의 희생자가 된 모든 젊은이에게 주님의 십자가와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성화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깊은 위로가 되길 빕니다.”
안타깝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1일 선종하면서 2027년 한국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의 뒤를 이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가 반드시 WYD에서 젊은이들을 만날 것이리라.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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