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 하구원의 수문. 수문을 기준으로 안과 밖의 물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 땅은 메말라갔고 생물들도 죽어갔다. 아름다웠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철새들과 염생식물(염분이 있는 땅에 사는 식물), 말라버린 조개껍데기들만이 이곳이 갯벌이었음을 알려준다. 전북 군산 앞바다의 새만금 갯벌 이야기다.
2006년 새만금 물막이 공사·2010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끝난 뒤, 생명의 땅이었던 새만금 갯벌은 죽음의 땅이 됐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이었던 새만금 개발사업은 동시에 최대 생태계 파괴사업이 됐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을 맞아 8월 19일 뙤약볕 아래 고요한 새만금 갯벌을 찾았다.
해창 갯벌 모습. 바닷물이 끊기면서 바다로 나가지 못한 배들이 놓여 있다.
생명의 땅에서 죽음의 땅으로
“여기가 동진강 하구원이거든요. 보시면 녹조 현상이 나타났죠? 물이 흐르지 못하고 갇혀 있으니까 물 색깔이 이런 겁니다.”
구중서(율리아노, 전주교구) 활동가가 동진강 하구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만금호로 이어지는 동진강의 하구원은 수문을 기준으로 수문 안쪽은 물이 녹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서는 생명이 살 수 없다는 표시 같았다.
동진강 하구원을 뒤로한 채 얼마쯤 달리다 차를 세운 뒤 구 활동가와 물가로 내려갔다. “이곳은 원래 바다였는데 지금은 빗물 외에는 들어오는 물이 없어요. 해수유통이 안 되니까 썩을 수밖에 없는 거죠.” 구 활동가가 나무로 돌을 긁자 때가 벗겨지고 원래의 색이 나타났다. 바다였던 곳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말라 죽은 조개껍데기만 가득했다.
구중서 활동가가 나뭇가지로 돌에 끼인 때를 긁어내고 있다.
수라 갯벌로 발길을 옮겼다. 이날은 해수유통으로 갯벌에 바닷물이 가득했다. “건너편에 미군기지 보이시죠? 그리고 지금 보이는 물이 들어와 있는 부분을 다 메워 공항을 만든대요. 미군기지보다 수라 갯벌이 지대가 낮아서 이곳 지대를 높여 활주로를 만든다고 합니다.” 수라 갯벌을 바라보고 있는데 오두희(안나, 평화바람) 활동가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새만금에 남은 마지막 갯벌이자 연안습지인 수라 갯벌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수라 갯벌 반대쪽은 새만금 9공구 지역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악취가 풍겼다. “썩은 냄새가 나죠? 그런데 이것도 많이 안 나는 겁니다.” 구 활동가가 새만금 9공구 지역을 바라보며 말했다. 간척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새만금 9공구 지역은 갯벌을 메워 공업단지로 만든단다. 그래서인지 바닷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할 자리에는 매립에 사용할 흙이 거대한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철새들이 일부 바닷물이 들어온 곳과 토사로 뒤덮인 땅 경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우리 손으로 포기하고, 개발 이익만 챙겨야 했을까. 이곳도 머지않아 흙으로 뒤덮인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철새들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전주교구가 8월 19일 해창 갯벌에서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생명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새만금 생태계 복원을 위해 교회가 나섰다. 전주교구는 7월 22일부터 전북 부안 해창 갯벌에서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첫 월요 미사를 봉헌한 후 월요일마다 새만금 생태계 복원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구는 해수유통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펼치고 있다.
해창 갯벌 역시 바지락과 생합을 비롯해 멸종위기종 서식지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생태적 가치를 지닌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풀만 가득한 메마른 땅이 됐다. 수북이 쌓인 조개껍데기들과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발이 묶인 어선들만이 과거 이곳이 갯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어민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교구민과 활동가들은 월요일마다 새만금 생태계 복원을 외치고 있다.
다섯 번째 미사가 봉헌된 8월 19일에는 34℃가 넘는 폭염에도 사제와 수도자·신자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김훈(전주교구 장수본당) 신부는 미사 강론을 통해 “수십 년 동안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남은 것은 썩어가는 새만금호와 근심과 걱정으로 주름살 가득한 주민의 한숨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새만금 생태계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첫걸음은 상시 해수유통”이라며 “기본과 정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정선(정혜 엘리사벳, 우림본당)씨는 “새만금에 상시 해수유통이 이뤄져 생태계가 하루 빨리 복구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고 했고, 강완모(가브리엘, 고창본당)씨는 “해수가 유통돼 죽음으로 향하는 갯벌이 다시 생명을 얻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새만금 9공구 지역. 간척 사업을 위한 흙이 산처럼 쌓여 있다.
새만금을 살리려는 외침
“사람으로 따지면 산소 호흡기를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호흡으로 돌아가려면 해수유통을 통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해요.” 구중서 활동가는 “새만금호는 깊이 1~2m 정도에만 생물이 살고, 아래는 산소가 없어 생물이 살 수 없다”며 “상시 해수유통이 안 되다 보니, 특히 방조제 안쪽은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생태계 복원을 위해 상시 해수유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악취가 많이 났었어요. 그런데 해수유통을 하면서부터 악취가 많이 없어졌어요. 그 말은 해수유통이 답이라는 말이겠죠.”
“바닷물만 들어오면 다 살 수 있어요. 산소가 있어야 생물이 살잖아요. 그래야 정화도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땅을 조금만 파도 썩은 냄새가 나요. 3년 전에는 냄새가 나서 수라 갯벌 앞을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어요.” 오두희 활동가는 “상시 해수유통을 하면 수위가 올라가 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라며 “결국은 개발이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오 활동가는 “매립을 하면 갯벌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라며 “상시 해수유통으로 갯벌의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상시 해수유통하면 새만금 다시 살아나”
인터뷰 / 전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길성환 신부
“아프다고 고통스럽다고 울부짖는 바다와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손상된 피조물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바랄 뿐입니다.”
길성환(전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예전의 새만금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터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냥 놔두면 사시사철 먹을 것이 나오는 땅이었습니다. 먹을 것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는 천혜의 바다였지요.”
길 신부는 “하지만 현재 새만금은 개발이라는 색이 입혀져 있다”며 “생명만 죽은 것이 아니라 새만금에서 삶을 이어왔던 어민들과 사람들의 삶도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정부가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로서 복합문화관광의 메카, 저탄소 녹색성장, 청정생태환경을 통한 미래 한국이라 외치고 있다”며 “그동안 정부가 수질 개선을 위해 4조 원을 쏟아 부었다고 하지만 아직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고, 새만금 내측 심층은 퇴적물이 쌓여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빈산소 상태’인 곳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길 신부는 “그나마 두 번의 해수유통을 한 후 다행히도 완전히 죽은 갯벌의 극히 일부에서 생명의 죽음과 회복이 반복되고 있다”며 “생명체들이 아직 남아있는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 갯벌을 지켜보며 복원의 희망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만 적은 해수유통으로 회복될 희망을 새만금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지금이라도 상시 해수유통을 한다면 새만금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새만금 생태계 복원을 간절히 희망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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