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브루크너. 출처=Wikimedia Commons
에페소서에 따르면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편은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바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한다.(5,22-25 참조) 둘이서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주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게 하신다는 말씀은 부부가 주님의 분신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조금만 잘못 해석하면 아내의 순종만을, 남편의 사랑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황당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원하는 대로 보고 해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권위를 빌려오는 것은 부당한 방법이다. 사람 간의 다툼과 불화가 생기는 요인의 90%가 같은 진리를 보며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올해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브루크너의 탄생 200주년이다. 브루크너는 후기 낭만주의를 화려하게 꽃피운 이였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노선을 따르던 작곡가다. 당시 음악계는 브람스를 필두로 하는 ‘고전주의자’들의 큰 세력이 있었으며, 바그너를 중심으로 한 ‘급진진보주의자’가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었다. 브람스 학파 쪽에서 보기엔 바그너와 그의 집단이 하는 음악은 이해 불가능이었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화성, 민족주의적인 황당한 극본, 과대 망상증을 의심할 만큼의 대형 편성 등 바그너 학파가 하는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연주회장에 가서 연주 중 큰소리로 훼방을 놓거나 고의적으로 연주회를 망치기 위해 연주자들을 매수하기도 했다. 바그너 쪽의 세력이라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그들은 브람스를 ‘시대에 뒤떨어진 저능아’라고까지 표현했으며, 브람스 학파를 실제적으로 이끄는 평론가 한슬릭을 공개적으로 폄훼했다.
그런데 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바그너와 브람스 학파의 갈등 원인은 같은 음악적 원칙을 다르게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음악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왔고, 동시에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기들의 음악적 취향을 배경으로 자기들만이 옳다고 우긴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두 세력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즐길 수 있다. 서로 죽일 듯이 적대시했던 살벌한 치열함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양 진영이 어떻게 발전하고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사조로 진행되는지 흥미진진할 뿐이다. 개성이 넘치는 양 진영의 음악은 지금에 와서 우열을 가릴 필요도, 어느 한쪽을 제외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진정한 진리라고 믿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그것을 오독한 우리 자신에서 비롯된 자의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를 해결할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주셨는데 시간·인내·타협 그리고 이해가 그것이다. 깊고 바른 진리는 우리의 주관으로 멋대로 재단하고 장난질 칠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바른 길을 찾아 오게 되어 있다. 진리가 가진 힘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
//youtu.be/Cshk5pEgSyY?si=-huYoCvV3BH5bEnc
브루크너 교향곡 7번
//youtu.be/uaV3eEJB55c?si=nqIEpROKToAJyE8l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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