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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일어나 비추어라”… 교황이 남긴 위로·희망의 메시지 지금도 ‘유효’

참 빛 사랑 2024. 8. 21. 15:14
 

갈등과 분열의 시대다. 우리 사회는 혐오와 양극화로 갈라졌다. 세대와 성별·이념으로 나뉘어 서로 무시하고 비방하기 일쑤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비극마저 정쟁과 논쟁 소재가 된다. 남북관계도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아래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대화 대신 쓰레기 풍선과 대북 확성기 방송만 오간다. 한반도에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선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대전의 망령’이 되살아날까 두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어느 때보다 치유와 희망이 절실한 지금. 10년 전 이맘때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인물이 떠오른다. 2014년 8월 14~18일 한국을 사목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를 주제로 방한 내내 교황은 한국 사회가 겪은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분열과 갈등 극복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주문했다. 큰 울림을 줬던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아니 더욱 유효하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0주년을 맞아 그해 여름 뜨거웠던 기억과 말씀을 되새겨본다.
 
한국을 사목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높이 들어 한국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노란 리본과 나비

2014년 8월 14일 오전 10시 15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에서 출발한 지 11시간 만에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어 25년 만에 이뤄진 역대 세 번째 교황 방한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1년 반 만에, 그것도 아시아 첫 사목 방문지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 교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물론, 분단의 아픔을 겪는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정신을 심어주려는 뜻이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왔습니다.” 영접하러 나온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교황이 건넨 첫 마디다.

교황은 방한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평화와 화해를 노래했다. 로마로 떠나는 마지막 날에도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를 촉구했다. 교황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의 미사’를 봉헌하며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성경 말씀을 인용, 이렇게 외쳤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이때 교황이 걸친 흰 제의에는 한국에서 선물 받은 두 개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하나는 방한 넉 달 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었다. 나비 모양의 다른 배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날았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두 배지는 교황의 4박 5일 방한을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일정 내내 가장 아프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로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의 만남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과 교직원 등 3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마침 8월 14일 공항으로 교황을 영접하러 나온 32명 환영단 가운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포함돼 있었다. 환히 미소 지으며 일일이 환영단에 인사하던 교황은 유가족 앞에서는 진지한 얼굴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오른손은 유가족의 손을 잡고, 왼손은 자신의 가슴에 얹은 채였다. 그 모습을 본 고 남윤철(아우구스티노) 안산 단원고 교사의 부모 남수현(가브리엘)·송경옥(모니카)씨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교황도 고통을 함께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이튿날인 15일 따로 시간을 내 세월호 유가족을 면담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직전이었다. 이때 유가족이 교황에게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배지를 선물했다. 교황은 한국을 떠나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배지를 떼지 않았다. 아울러 교황은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마친 뒤 삼종기도 연설을 통해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와 국가적 대재난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이 비극적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 공동선과 대의를 위해서 일치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교황은 또 단원고 학생인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를 숙소인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초청해 직접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거행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124위 시복식에서도 이어진 위로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은 방한의 하이라이트였다. 40년 전 여의도광장에서 거행된 103위 시성식 때처럼 드넓은 광장이 신자들로 가득 찼다. 교황을 보기 위해 4~5시간씩 기다린 이들은 마침내 교황이 차를 타고 등장하자 일제히 일어나 ‘비바 파파’, ‘프란치스코’를 외치며 뜨겁게 환영했다. 교황은 여름 햇빛보다 더 환한 미소로 그 호응에 화답했다.

그러다 교황이 갑자기 차를 세운 뒤 손수 문을 열어 내렸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교황은 웃음 대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 남자의 손을 꽉 잡고 위로했다. 34일간 단식농성 중이던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였다. 김씨는 교황에게 편지를 건네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교황은 경호원을 통해 갓난아기를 받아 안수기도도 하며 신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이날 시복식은 한국 교회와 순교자를 위한 위로 차원이기도 했다. 교황이 이들을 복자 반열에 올린다고 선포한 순간,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하며 한국 교회 초석을 다진 순교자들이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시복식은 교황이 아닌 시성성 장관이 거행하는 게 관례였다. “시복식은 언제나 교황 행위이지만, 통상적으로 교황을 대리해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거행하게 될 것”이라는 교황청 시성부의 2005년 9월 23일 자 ‘시복식의 새로운 절차에 관한 공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교황은 직접, 그것도 로마가 아닌 한국 현지에서 시복식을 집전했다. 이 역시 한국 교회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배려가 녹아있는 것이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이 순교자들의 피와 땀·눈물이 배어있는 박해 장소이자 역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인근에 신앙 선조들이 옥고를 치렀던 형조터와 우포도청터·의금부터 등이 위치한 까닭이다. 교황은 시복식에서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복자 바오로와 그 동료들을 오늘 기념하여 경축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여명기, 바로 그 첫 순간들로 돌아가는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8일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거행하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위안부 할머니 손 잡고 남북 화해를 외치다

8월 18일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근현대사 속 아픔을 간직한 이웃들이 참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7명을 비롯해 북한이탈주민과 납북자 가족·제주 강정마을 주민·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용산참사 피해자 유가족 등이었다. 지팡이를 들고 입장하던 교황은 신자 석 맨 앞에 앉은 위안부 할머니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할머니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위로를 전했다.

할머니들이 아픔을 달래준 교황에게 고마움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다. 자신들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 ‘못다 핀 꽃’(고 김순덕 할머니 작) 그림이었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교황에게 희망 나비 배지를 선물했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 제의에 배지를 달고 제대로 향했다. 그리고 교황은 한 가정을 이루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닐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지 말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아울러 교황은 “용서와 화해는 인간 시각으로는 불가능하고 거부감을 주는 것이더라도 예수님은 당신 십자가의 무한한 능력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역설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이것이 한국 방문을 마치며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AYD)에 참여한 청년과 셀카를 찍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아시아 청년들에게 격려를 전하다

방한 중 교황은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AYD)에도 참여했다. 지역 청년대회에 보편 교회 수장인 교황이 참여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교황은 김대건 신부 생가가 있는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청년 6000여 명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청년들과 격의 없이 셀카(셀프카메라)를 함께 찍기도 했다. 이날 만남에서 교황은 영어 연설문을 치우고 이탈리아어로 30분간 즉흥 연설을 해 더욱 주목받았다. 교황은 “주님을 공경하고 주님 뜻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질문하며 살자”고 힘줘 말했다.

“여러분은 어떠한 길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택은 주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길을 선택하셨고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고 여쭈어야 합니다. 젊은이가 해야 할 기도는 이것입니다.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대강당 입구에 조성된 태아동산에 들러 낙태된 태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제6회 AYD 주제는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추고 있다’였다. 교황은 8월 17일 해미성지에서 거행된 폐막 미사에서도 아시아 젊은이들을 향해 그 주제를 되새길 것을 요청했다.

“잠만 자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일어나십시오.’ 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습니다!’(시편 67,6) 그분으로부터 우리는 ‘자비를 입었습니다.’(로마 11,30)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교회와 하나 되어 많은 기쁨을 가져다줄 이 길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