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부터 저는 속삭이다시피 노래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목소리에 힘을 다 빼고 부르는 제 노래를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 시행착오 끝에 찾게 된 지금의 목소리가 저는 싫지 않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는 일에 반드시 화려한 기교나 폭발적인 가창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태양처럼 강렬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밤하늘의 초승달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음악도 있지요.
그러니까, 제 음악은 굳이 말하자면 환한 대낮보다는 새벽이나 밤에 더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사람들은 제 노래를 주로 자기 전에 많이 듣는다고 해요. 잔잔하니 잠이 잘 온다면서 말이죠. 제 유튜브 채널에는 ‘새벽의 자장가’라는 제목의 재생목록이 하나 있는데, 이따금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커버(cover) 하여 짧은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는 코너입니다. 잔잔한 목소리 때문에 어떤 곡을 불러도 자장가처럼 들려서인지 꽤 많은 분이 잠들기 전에 제 노래를 듣기 위해서 채널을 찾아주십니다. 수험생과 퇴근이 늦은 직장인들, 또 늦은 시간까지 잠 못 이루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남기고 간 댓글을 읽다 보면 저의 새벽도 한결 포근하게 깊어갑니다.
내 노래 소리가 온 새벽을 가로질러 너에게 닿아라
온 세상이 잠든 사이에 어서 널 어루만져
아픔이 가셔라 눈물도 가셔라
희망 때문에 더 슬퍼하는 사람들이 잠든 이 새벽에
아침이 오기 전, 이 마지막 꿈의 몇 자락만은 행복해라
열일곱 살 무렵에 처음으로 썼던 자작곡 ‘새벽의 자장가’의 한 대목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마음만은 단숨에 열일곱 살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 안에 작지만 깊은 소망이 생겨났던 그날의 새벽으로 말이죠. 아직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내 소리가 아주아주 먼 곳까지 뻗어 나가 홀로 남겨진 사람들 곁을 조용히 지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돌아온 이들의 밤을 나의 노래로 가만가만 다독여 줄 수 있다면. 낮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짙푸른 외로움이 밤이면 어느 그 누구도 삼켜버리는 일이 없게, 지친 마음이 다만 잠시만이라도 내 음악 안에서 편히 쉬어갈 수 있게, 그렇게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망은 동시에 많은 것이 되었습니다. 저의 꿈이 되고, 꿈은 저의 기도가 되고, 기도는 저의 길이 되고, 길은 다시 저의 목소리가 되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정말이지 요란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자장가는 그저 자장자장 노래하면 되는, 그런 것이니까요. 제 침대 머리맡에 성경 구절이 하나 붙어있습니다. 밤새 저를 지켜주고, 아침이면 제게 희망을 주는 이 말씀을 끝으로, 모쪼록 여러분의 밤과 새벽이 오래 평안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이시네.”(시편 103,3.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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