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대교구는 최근 대교구 의뢰로 한 법무법인이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받아들고 충격과 실망에 휩싸였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45년부터 2019년 사이 대교구 내에서 최소 497명의 성학대 피해자가 발생했다. 또 최소 235명의 가해자가 확인됐는데, 가해자는 대부분 성직자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도 과거 뮌헨대교구장 재임 시절(1977~1982)에 성학대 사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포함돼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1월 27일 보고서 관련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지금 재앙을 보고 있다”며 “아직도 교회의 입장과 구조 측면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 도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신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간과했음을 시인하고 “교회는 희생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혁과 관련해 교구의 위기 대응책으로 논의되는 ‘독일식 절차(German process)’를 전향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식 절차란 교구 구성원들이 장시간 논의한 끝에 내놓은 위기 극복 및 쇄신 방안들이다. ‘시노드 여정’이라고 불리는 이 회의기구는 사제 독신제와 교회 여성의 역할, 동성애 문제까지 논의 대상에 포함해 이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교회 내 보수주의자들은 이 회의기구가 내놓은 대책들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깊이 있는 개혁 없이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개혁 속도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더 많은 여성을 책임 있는 자리에 기용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하는 교회 쇄신 방안들에 전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개혁파다. 지난해 말 성학대 사건과 관련해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교구장직 사임서를 제출했지만 교황이 이를 즉시 반려했다. 그는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도움보다 방해가 된다는 인상을 받으면” 바티칸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법무법인의 질의에 82쪽 분량의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 조사 보고서에 담긴 전임 교황 연루 의혹은 크게 4가지인데, 대부분 10여 년 전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들이다. 전임 교황은 조사 보고서를 검토한 후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개인비서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가 전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교황청 신앙교리성 총회 참석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성직자의 성학대를 포함한 ‘중대한 범죄’에 엄격한 사법 조치를 주문했다. 교황은 모든 종류의 학대에 맞서 싸우라고 촉구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 의지와 함께 대응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사법 조치만으로 이 현상을 막을 수 없지만, 정의를 회복하고 스캔들을 바로잡으며 가해자를 교정하는 데 있어 필요한 조치”라며 성학대 범죄에는 ‘불관용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교황은 2017년 전 세계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교회 일부 구성원들이 아동을 성추행하고, 그것을 은폐한 죄로 어린 아들딸들이 겪는 고통에 어머니 교회가 눈물을 흘린다”며 관련자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충실하게 적용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주원준 옮김, 도서출판 눌민)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