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진석 추기경, 입원 중 한국 교회와 신자들에게 남긴 육성 녹음 공개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며 마지막까지 행복론을 전했던 고 정진석 추기경이 한국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남긴 약 10분 분량의 육성이 공개됐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는 정 추기경이 입원 중이던 지난 2월 22일 주교단과 사제, 의료진이 자리한 가운데 남긴 육성을 21일 공개했다. 이날은 정 추기경이 극심한 고통 중에 있다는 병원의 전갈을 받고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사제단이 의료진과 함께 병실을 찾은 날이었다. 염 추기경에게 병자성사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공개된 음성에는 정 추기경이 무척 힘겨운 가운데에도 주교단과 사제, 신자들에게 당부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정 추기경은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변화할 것 같다”면서 “그런 때에 우리 교회가 중심을 잡고 사회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느님께 매달리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첫마디를 뗐다. 정 추기경은 “‘우리 교회가 흔들림이 없구나!’(하고 느껴지도록)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굳센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면서 위기 속에 교회가 굳건한 모습으로 주님을 향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위해 최양업 신부님을 복자로 발표해주시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께 믿음이 꿋꿋하다는 본보기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면서 위독한 순간까지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간절히 염원한 뜻을 내비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 추기경은 목소리를 내는 데 중간중간 힘겨워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은 이와 관련해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을 번역한 일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편지를 쓴 사연을 전하면서 “내가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를 번역한 것도 우연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다”며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를 우리 교회가 잘 보관하고, 그 번역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전했다.
정 추기경은 방대한 「교회법전」을 펴낼 수 있었던 데 대해서도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끝마무리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기회를 주셨다”면서 “제가 하느님을 위해서 영광을 드리는 일에 한쪽 모퉁이에서 애를 쓴다고 노력해왔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전했다.
정 추기경은 신자들을 향해서도 “하느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동시에 하느님을 믿을 수 있도록 교회로 인도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며 “평생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하느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이 세상에 사람으로, 지성을 가진 영물로, 창조주를 알아모시고 살도록 이끌어주신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냐”면서 “(저는) 그 복된 일을 감사하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을 수행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시고 믿는 사람으로 이끌어주시고, 또 그런 가운데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자손들을 잘 훈육하여 세상에 내보내고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본보기가 되게 하면서 살게 해주신 뜻을 고맙게 감사하면서 삽시다” 하고 짧지 않은 문장도 이어갔다.
염 추기경과 사제단이 정 추기경의 말이 끝난 뒤 함께 “아멘!” 하고 화답하자, 정 추기경이 곧장 “하느님 만세!” 하고 답했고, 모두 크게 웃음 짓기도 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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