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기획특집

보호시설 세워 ‘노숙인 주치의’로 봉사와 나눔 30년

참 빛 사랑 2024. 12. 12. 14:35
 
진료실에서 밝게 웃어보이고 있는 내과의사 김만달씨. 김씨는 30여 년간 헌진적인 봉사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제41회 가톨릭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축하합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상을 받으셔야지요.”

“자격 없는 제가 상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지난 3일 전남 여수시 교동시장에 위치한 ‘김만달내과의원’. 내과의사 김만달(골롬바노, 76, 광주대교구 미평동본당) 원장이 올해로 42년째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평상시에도 북적이는 병원이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한결 들떠 있었다. 김씨가 노숙인 시설 ‘엠마우스’를 만들어 30여 년간 봉사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41회 가톨릭대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김 원장 병원의 오랜 단골로 광주에서 병원을 찾아왔다는 곽금용(69)씨는 “선생님은 환자들 사이에서도 자상하고 친절하면서도 꼼꼼한 진료로 유명했는데 상을 받으신다니 내 일처럼 기쁘다”며 “여수에서 살다 광주로 이사를 갔지만 선생님 같은 분을 찾지 못해 계속 내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축하인사를 할 때마다 일일이 일어나 감사의 뜻을 전하는 동시에 겸손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 연신 “저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봉사상을 받게 됐지만, 이 봉사는 자선도 아닐 뿐더러, 개인적으로 한 게 아니라 우리 엠마우스 회원들 모두가 참여해서 한 것”이라며 “시설에 계신 분들을 진료하고 치료할 병원을 알아보는 일 정도만 했는데, 이토록 과분한 상을 받는 게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제41회 가톨릭대상을 수상한 김만달씨가 3일 자신의 병원을 찾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 원장이 진료 봉사를 시작한 때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1년 전 아내를 따라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막 시작한 상황이었다. 이때 그는 당시 다니던 광주대교구 서교동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노숙인 지원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 본당 빈첸시오회는 우연히 만난 한 행려 환자에게 머물 장소를 마련해주고 돌보고 있었다. 김 원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아무리 성당이라고 하지만 가족 이상으로 정말 따뜻하게 진심으로 돕는 것을 보면서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 제 직업을 살려 그분 진료를 맡기로 했다”고 전했다.



노숙인 보호시설 ‘엠마우스’ 만들어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봉사를 시작했던 김 원장은 함께 활동하던 빈첸시오회 회원을 포함해 5명과 뜻을 모아 1992년 ‘엠마우스’를 결성하고 노숙인 보호시설을 만들었다. 김 원장은 “우리가 만나는 계기가 됐던 그 행려 환자분께서 돌아가시기 전 개인적으로 모아온 돈이라며 우리에게 620만 원을 남겨주셨다”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따르고자 그 돈을 종잣돈 삼아 허름한 집을 한 채 마련해 행려 환자나 노숙인들, 어르신 가운데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분들을 모셔다 돌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엠마우스 결성에는 김 원장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일회성 봉사를 넘어 세상의 어려운 이들을 계속 돌볼 시설을 만들자고 제안한 데 그치지 않고 노숙인 시설을 만들기 위해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 원장과 엠마우스 회원들은 1993년 전남 여수시 광무동에 작은 건물을 마련해 사회 그늘 속에 숨어 있던 이들을 물심양면 돌봤다.
 
병원 진료를 하고 있는 김만달씨. 김씨는 친절하고 꼼꼼한 진료 활동으로 환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무연고자 장례까지 치러줘

김 원장과 엠마우스 회원들은 2003년 여수시 국동으로 시설을 옮긴 이후에도 20여 년간 봉사를 이어갔다. 이렇게 30여 년 동안 그는 시설에 입소한 이들의 ‘주치의’가 돼줬다. 어렵게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대면서 그들의 건강을 보살폈고,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이들의 차가워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설에서 보호하다 운명을 달리한 이들 가운데 가족들이 찾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를 김 원장이 직접 장례를 치르고 묫자리를 알아봐 줬다. 그가 직접 장례까지 치러준 이는 10명이 넘는다. 주치의로서 건강 돌봄을 넘어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이 돼준 것이다.

그러나 김 원장은 자신이 한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시설에 계신 분들 입장에서는 식사를 챙겨주거나 머리를 손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처럼 옆에서 돌봐드리는 게 더 중요한 일일 것”이라며 “저는 돌보는 분들 옆에서 일을 조금 거든 것에 불과하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옆에서 돕는 일 또한 제가 정말 선한 분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다”며 “스스로에게 칭찬할 것은 그분들의 활동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세상의 시선 밖에 있는 이들을 돌보던 시설인 ‘엠마우스’는 설립 30주년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21년 11월 폐쇄됐다. 복지시설이 많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더 전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복지시설이 늘면서 ‘엠마우스’를 찾는 이들이 줄어든 탓이다. 결국 엠마우스 회원들은 약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운영하던 건물을 작은형제회에 기부하고 엠마우스 운영을 종료했다.



시설 운영 종료했지만 봉사는 계속

김 원장은 “시설 운영을 종료하면서 모시던 분들을 못 모시게 된 것이 무척 아쉬웠다”면서도 “시설은 작은형제회에서 정리해 이를 교회를 위해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순수하게 봉사를 위해 이 시설을 사용한다는 처음 취지를 끝까지 지켰다는 점에서 시원한 감정도 들었다”고 밝혔다.

엠마우스는 문을 닫았지만, 복음 말씀을 따라 그늘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김 원장은 20여 년 전부터 여수 ‘예리고의 집’을 찾아 홀몸 노인들을 무료 진료해오고 있다. 또 여수시·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등과 협력해 이동 차량을 이용한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엔 노숙인 시설을 함께 운영했던 엠마우스 회원들과 작은형제회의 탈북민 지원 프로그램인 ‘한우리 후원회''에 참여해 기부활동도 펼치고 있다. 나눔의 마음과 자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봉사는 하느님의 은총이자 행운

김 원장은 자신이 이처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하느님 계획 속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저를 써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1986년 광주 서교동본당 빈첸시오회 활동을 목격한 게 제가 아닌 다른 의사였더라도 그 역시 그들에게 감화돼 봉사에 임했을 것”이라며 “주님의 선택을 받아 도구로 쓰일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는 것에 더없이 감사드리고 싶다”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