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새 계명’(요한 13,31-35 참조)을 따라, 다양한 원인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이웃을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 잡게 해주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이들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고유한 모습을 드러내는 주는 중요한 형태 중 하나이자 교회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베네딕토 16세 교종께서는 당신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 이하 DCE)를 통해 이러한 ‘사랑의 섬김(diakonia)’을 교회의 본질적 임무로 소개하셨다. “교회의 가장 깊은 본질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kerygma-martyria), 성사 거행(leitourgia), 그리고 사랑의 섬김(diakonia)이라는 교회의 삼중 임무로 드러납니다. 이 임무들은 서로를 전제로 하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교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종의 복지 활동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표현입니다.”(DCE 25항, 가)
교회 공동체가 행하는 조직적인 자선활동을 일반적으로 카리타스(Caritas)라 일컫는다. 카리타스 활동은 신자 개인의 애덕 실천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가 관심 갖고 야전병원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 속 어려움에 함께할 것을 사명(Mission)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카리타스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 이웃에게 하느님 사랑을 증거해주며, 나아가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다.
현대사회는 참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자본주의 사상의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으며,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가면서 현대인들은 참된 진리에 대한 목마름조차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기후위기로 야기된 문제들은 공동의 집인 지구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들을 마치 인간들이 주인인 양 착각해 얼마나 어리석게 사용했는지 뒤늦은 후회를 가져다준다.
우리나라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양극화 속에 많은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상당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자살률이 줄어들고 출산율이 높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위정자들의 어리석은 모습 속에 공동선의 가치는 무색해 보이며, 자본과 세상 권력에 기반한 계급이 암암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금 베네딕토 16세 교종의 첫 회칙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참된 진리인 ‘사랑’만이 이 안타까운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사회 문제들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천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보는 마음’이다. 보는 마음이란 “사랑의 활동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보고 거기에 따라 알맞게 행동”하게끔 이끌어주는 관점이다. 보는 마음을 통해 교회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실천해야 할 행동들이 무엇이며, 개인의 자발적 참여와 함께 기관 차원에서의 협력과 유기적인 개입이 필요한 곳을 발견하게 된다.(DCE, 31항 참조)
사회교리의 방법론에서도 관찰의 단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판단해, 예수 그리스도처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회교리의 실천방법인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절망적이고 암울한 뉴스가 유독 많은 요즘이다. 이런 때일수록 하느님 자녀들이 ‘보는 마음’을 통해 절망 속에 더욱 밝은 빛을 비출 때가 아닌가 싶다.
김성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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