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솔직히 혼자 사는 사제가 혼인생활에 대해 조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토로하고자 합니다. 혼인생활에 조금이나마 조언을 드리고자 남녀 간 사랑 노래에서 답을 찾자고 하니, 사랑 노래는 대부분 이별·슬픔·아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조영남 씨의 ‘지금’이라는 노래가 마음 깊이 와 닿았는데, 노래 영상을 보며 ‘이별을 앞둔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느낄까?’ 자문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린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닌걸. … 진정 사랑했는데 우리는 왜 사랑은 왜 변해만 가는지.”
그러고 보면 사랑에는 성공보다는 실패·이별·상처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남녀 간의 사랑에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그 많은 사람이 아픈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실패한 사랑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성공한 사랑이 흔하지 않고, 그만큼 사랑이 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사랑이 어떤 면에서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오늘을 새롭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사랑의 사연을 간직하고 살면서, 늘 아름다운 사랑을 꿈꿉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사랑의 결실로 혼인에 이르는 두 남녀를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어떤 것이 성공한 사랑일까요? 아무런 문제 없이 지금 마음 그대로 끝까지 잘 간직하는 것일까요? 얼마 전 신학교에서 어떤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혼배미사 강론 때 하시는 말씀을 나눠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애써서 사랑해야 할 때가 올 겁니다.” 신학생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저절로 사랑이 되던 때가 지나 애써 사랑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신학생만이 아닌 사제들도 저절로 사랑이 되던 때가 지나 애써 사랑해야 할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보다는 모든 사랑에 담긴 나약함과 진실함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상처 입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나약하다는 것, 그리고 사랑도 그 나약함을 관통하는 것임을 깨달아 가는 것이 결혼생활이 아닐까 합니다. 사제 생활도 그러하듯 말이죠. 그렇지만 나약함이 반드시 거짓이나 그릇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약하지만 진실하기에, 나약함을 안고 계속해서 나아가기에 멋지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저는 상대방의 사랑의 진가를 알려면 그 사랑이 완벽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여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랑이 거짓이라거나 참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고 현세적이라고 하여도 그 사랑은 참된 것입니다. (⋯) 사랑은 불완전함을 지니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부드립니다. 인간이 얼마나 상처 입기 쉬운 존재인지 아십시오. 그렇기에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돌봄과 보살핌, 관대함과 공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 아십시오. 사랑이 얼마나 우리의 나약함 깊은 곳까지 관통하는지 아십시오. 그래서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서로의 존재에 대해,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같이 가는 존재가 있음에, 그리고 꽃다발처럼 주위로 아름다운 꽃들이 여러분을 축복하고 응원하고 함께 있음에.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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