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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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조금 느린 청년들’ 일이 있어 행복합니다

참 빛 사랑 2024. 6. 19. 16:44
 
조재범(왼쪽)씨와 임예찬씨가 어깨동무를 한 채 활짝 웃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게 걷는 이들이 있다. 지능지수(IQ)가 71~84인 경계선지능인(느린학습자)들이다. 이들에겐 주어진 일을 곧잘 해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좀더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경계선지능인 청년들이 자립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곳이 있다.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문수 신부)이 운영하는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이다. 다른 식당보다 모든 것이 조금은 더 느리지만, 그래서 기쁨과 보람·희망이 흐르는 특별한 식당이다. 7일 이곳을 찾아 청년들을 만났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 전경. 건물 지하 1층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 내부 모습.



경계선지능인이란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소외되기 쉬워
사회생활에 어려움 겪기도 
국내에 청년만 93만여 명 추정

3월 개점한 슬로우점에서
반복훈련과 수습 거치며 일 익혀 
교육 덕분에 점차 자신감 얻어
손님들의 응원·후원은 큰 에너지  

새로운 꿈을 꾸며 삶을 개척





청년들의 새로운 시작

저녁 영업 시작인 오후 5시가 가까워오자 청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청년이 가게 바닥을 청소하자 다른 청년은 테이블을 정리했다. 또 다른 청년은 주방에서 열심히 식재료를 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안에는 새콤달콤한 김치찌개 냄새가 가득 퍼졌다. 3000원 짜리 김치찌개를 판매하는 청년문간밥상의 다섯 번째 지점인 슬로우점의 저녁 풍경이다. 임예찬(25)씨와 조재범(19)씨를 비롯한 경계선지능인 청년 3명이 이날 저녁 영업을 맡았다.

오후 5시, 가게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밥과 반찬은 셀프입니다.” 여느 식당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조금 ‘느릴’ 뿐이었다. 청년들의 느린 말과 행동에도 손님들은 끝까지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 안내에 따랐다. 주문할 때에도 손님 입장에선 다른 곳보다 인내심이 더 필요하지만, 이곳을 찾은 이들은 그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이며 식사에 임했다. 손님들의 “감사하다”는 말에 청년들의 얼굴에도, 음식을 맛본 손님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내와 함께 가게를 찾은 한 노인은 “우연히 슬로우점이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청년들을 응원하고 싶어 일부러 가게를 찾아왔다”며 “청년들이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김치찌개 맛도 좋아 주변에 적극 알릴 생각”이라고 했다. 친구와 함께 가게를 찾은 한 청년은 “같은 청년의 입장에서 응원하고 싶었다”며 “크진 않지만, 청년들을 위해 후원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의 벽면에 청년들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청년들을 응원하는 손님들의 메시지들.



느리지만 발맞춰 걷기 위해

우리나라의 경계선지능인은 약 700만 명. 전체 인구의 13.6%이며, 청년층만 93만여 명으로 추정될 만큼 적지 않다. 경계선지능인들은 느리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기회를 얻지 못하며,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어렵다. 이들은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고 학습능력·어휘력·인지능력·이해력·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적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또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기 때문에 발견이 늦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성장 과정과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작용한다.

청년밥상문간은 경계선지능인 청년들과 발맞춰 걷고 함께 성장하고자 1년여 준비 끝에 지난 3월 슬로우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추천받아 청년문간밥상 정릉점에서 3개월간 수습과정을 거쳐 선발됐다. 오전과 오후, 홀과 주방 등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가정해 교육을 철저히 받고, 반복 훈련을 통해 일을 익혔다. 이러한 관심과 맞춤형 교육 덕분인지 초창기 손님들이 몰릴 땐 우왕좌왕하던 이들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을 얻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졌다. 현재 슬로우점에는 청년 10명이 꿈과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다.

 
임예찬씨가 테이블을 닦고 있다.
 
조재범씨가 김치찌개에 들어갈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예찬씨와 재범씨 이야기

예찬씨는 사회생활 경험이 있다. 아르바이트도 했고, 회사도 다녔다. 하지만 회사 상사의 빠른 업무처리 요구를 따라가기가 무척 버거워 적응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예찬씨가 경계선지능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탓도 있었다. “회사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회사 다닐 때 좀 힘들었어요.”

결국 예찬씨는 회사를 관둬야 했다. 하지만 슬로우점에서 일한 뒤 예찬씨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졌고,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흥미가 생기면서 꿈의 크기도 커졌다. “지난달 첫 월급을 받았는데 저축을 시작했어요. 운전면허를 따려고 준비하고 있고, 컴퓨터 조립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재범씨는 이곳이 첫 직장이다. 일하기 위해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집에만 머물게 됐고, 사람들과도 멀어져갔다. 그런데 슬로우점 직원으로 뽑혀 일하면서 재범씨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주 4일을 출근하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됐고, 음식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손님이 많아 정신없이 바쁠 땐 힘들기도 하지만 일이 즐겁단다.

재범씨는 “집에 있을 땐 게임에만 빠져 늦게 자고 생활을 제대로 못했지만, 이젠 출근해서 일도 해야 하니까 게임할 시간도 없어졌다”며 미소 지었다. “첫 월급 받아 어머니 용돈도 드리고 같이 외식도 했어요. 지금은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주고받게 된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예찬씨와 재범씨를 일어서게 한 것이다.

슬로우점 이지혜(이스베리카) 점장은 “소극적이었던 청년들이 활발해졌고, 경계심도 확연히 줄었다”며 “지금은 마음의 문을 열고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는 등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와 기쁘다”고 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은 도전을 하는 청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도록 더 많은 분이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후원 : 농협 301-0272-7703-61

예금주 :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

문의(물품 후원) : 02-741-6031



 

느린 청년들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봉사할 기회 달라던 한 어머니 말씀에 시작… 슬로우점 더 늘릴 계획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문수 신부

“경계선지능인 청년을 자녀로 둔 한 어머니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이에게 봉사할 기회라도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간절함이 가득 밴 그 어머니의 말씀이 마음속 깊이 남았습니다.”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문수는 지난해 1월 경계선지능인 청년 부모들을 만난 뒤, 경계선지능인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교회와 사회에서도 소외된 그들의 부모를 만난 뒤 곧장 ‘슬로우점’을 열기로 결심했다. 당시 청년밥상문간 대학로점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는데, 회의를 거쳐 대학로점을 경계선지능인 청년들이 일하는 슬로우점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 신부는 슬로우점을 만들 때 무엇보다 경계선지능인 청년들이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경계선지능인 청년들이 불을 무서워하는 특성이 있어서 가스 화구 대신 인덕션을 설치했습니다. 또 임기응변이 다소 부족한 이들을 위해 상황 대처를 할 수 있는 대안도 모두 만들어놨는데, 다행히 아직 그 대안을 꺼내 적용한 적은 없네요.(웃음)” 처음 걱정과는 달리 슬로우점은 청년들과 함께 순항 중이다.

이 신부는 “슬로우점이 잘 자리 잡고 나면 청년들도 큰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슬로우점 같은 식당을 더 늘리고, 현재 운영 중인 청년밥상문간의 다른 지점에서도 이 청년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처음 준비할 때 한 청년이 ‘내가 하는 일이 생겨 감사하고, 그 자체로 어른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나이로는 이미 어른인데도 말이죠. 이들은 어쩌면 지금껏 ‘고맙다’, ‘잘했다’는 말보다 그 반대말을 더 많이 들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손님들이 감사 인사를 하면 크게 기뻐하고 금세 힘을 내는 모습을 봅니다. 앞으로 청년들이 용기 낼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