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빈소에서
▲ 정진석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이 고인을 위한 추모 기도를 바치고 있다.
▲ 4월 27일 밤 10시 15분,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하자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조종이 울려 퍼지고 있다.
▲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를 찾은 신자들이 조문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4월 27일 밤 10시 15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한 고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각층의 추모 및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서울대교구는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 공식적인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장례는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됐다.
▲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에서 수도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명동대성당 유리관에 안치
밤 11시 31분, 고인은 서울성모병원 지하 2층 주차장에 대기하던 구급차에 실려 곧장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으로 옮겨졌다. 4월 27일 저녁 11시 58분. 안구적출을 마친 정 추기경을 태운 구급차가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당도하자 조종(弔鐘)이 울려 퍼졌다. 추적추적 내리던 구슬 비가 이내 굵어져 어둠 속을 적셨다.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 주교단과 사제단, 수도자와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인의 유해가 유리관에 안치됐다. 성전 안에는 추기경의 주교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 문장이 내걸렸다. 염 추기경이 안치식을 주례하고, 고인을 위한 추모 기도를 바쳤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함께 기원했다.
염 추기경은 이어 거행된 선종 미사 강론에서 “추기경님은 태어나시자마자 며칠 만에 이곳 명동대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또 이 성당에서 복사를 서고, 첫 영성체와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으셨다”며 “주교가 되신 뒤 청주교구에서 봉직하시다가 서울에 오셔서 교구장으로 사목하시다 오늘 주님 품에 안기셨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염 추기경은 “옆에서 뵀던 정 추기경님은 깊은 영성과 높은 학식과 부드럽고 고매한 인격을 소유하신 사제 중의 사제셨다”면서 “항상 겉으로는 엄격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탈하시면서도 겸손하신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고 전했다.
염 추기경은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항상 북한 형제들과도 화해와 일치를 희망하셨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조건 없이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상대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그 유지를 본받아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신 예수님 모습, 생명을 존중하고,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끌어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키며 조문
4월 28일 오전 7시, 밤새 내린 봄비로 쌀쌀해진 날씨에 성직ㆍ수도자와 신자들의 조문이 시작됐다. 서울대교구 사제들과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 교구청 직원들이 제일 먼저 빈소를 찾았다.
연도는 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회장 정창혁)의 지휘로, 매시간 정해진 지구별 봉사자들이 시간대별로 돌아가며 바쳤다. 인원은 매 연도 때마다 80명 이내로 제한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한 조문객들은 거리 두기를 지키며 정숙한 분위기에서 조문을 이어갔다.
조문객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3명씩 조문했다. 유리관 안에서 묵주를 쥔 채 두 손을 모으고 고요히 잠든 추기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짧은 묵념을 바쳤다. 성전에 들어올 때부터 흐느껴 우는 신자들,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싼 채 오열하는 신자도 있었다.
한편, 명동대성당 문화관 2층 꼬스트홀에서는 매시간 지구별로 돌아가면서 미사가 봉헌됐다. 28일 오전, 꼬스트홀에서 미사를 주례한 김성권(서울 녹번동본당 주임) 신부는 “(추기경님이)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신 후 처음으로 추기경님께 사제품을 받았다”며 “많은 성소자와 사제들이 나오길 바라셨고,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셨다”고 회고했다.
이른 아침, 빈소를 찾은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정치우(안드레아)씨는 “한국 천주교회에 큰 별이 졌다”면서 “평소에 교회를 걱정하시며,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셨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개인적으로는 아들에게 사제품을 주신 인연이 있고, 책 추천사도 써 주셨다”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신인선(아숨타)씨는 “추기경님이 살아 계실 때 7, 8번 개인적으로 찾아뵈었는데 항상 존대어로 쓰시고, 저를 성모님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추기경님처럼 살고 싶어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을 서약했다”며 지갑에서 장기기증 등록증을 꺼내 보여줬다.
서울대교구는 굿뉴스에 추모 게시판을 열어 고인을 위한 추모의 장을 마련했다.
서울대교구, 선종 소식 공식 발표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는 선종 이튿날인 28일 오전, 교구청 신관 1층 로비에서 공식적으로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전하고, 장례 일정을 공개했다.
허 신부는 취재진들에게 “정진석 추기경님은 염수정 추기경님과 주교님들, 사제들, 수녀님들과 주치의 김영균 교수님과 의료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면서 “항상 선교를 최우선의 사목목표로 삼고, 특별히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목을 펼치셨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2018년 9월 27일 연명 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으며, 2006년에는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에 서약했다. 허 신부는 “정 추기경이 고령으로 장기 기증이 어렵다면 안구라도 연구용으로 사용해달라고 연명계획서에 친필로 부탁했다”고 회고했다.
허 신부는 “지난 3월 통장에 있는 잔액 모두를 명동밥집(1000만 원), 선교 장학회(5000만 원) 등에 기증했다”면서 “당신의 장례비를 남기겠다고 하셨는데 교구에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어 허 신부는 “추기경님은 선교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셨지만 당신이 살아계신 동안에는 장학회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서 “어린이 선교에 도움이 되는 장학회(설립 준비)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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