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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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사교리

[하느님과 트윗을] (4) 왜 하느님을 믿어야 하나요? ~ (5) 진리란 무엇인가요?

참 빛 사랑 2017. 6. 8. 22:17


[하느님과 트윗을] (4) 왜 하느님을 믿어야 하나요?
‘완전한 행복’ 오로지 하느님 안에 존재




: 왜 하느님을 믿어야 하나요.

: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갈망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온갖 스트레스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은 체험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이러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양심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 소리는 우리에게 선과 악의 차이와 하느님이 계신 곳을 말해 줍니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살펴보세요. 이것이 우연히 그렇게 됐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그 원인일까요?

: 그럼 하느님은 우리를 갈망하시나요.

: 우리가 하느님을 믿건 믿지 않건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결국,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그 계획에 협력하기만 하면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계획의 목적은 현재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와도 같이 하느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만을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을 믿도록 도와주십니다.



: 다른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내가 믿어야 하나요.

: 이 질문에는 한마디로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믿어야 할 때는 진심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선택은 온전히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에 진실로 귀를 기울이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이 존재하시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로 청할 때 받을 수 있는 선물이지요. 우리는 중병을 앓는 아들을 둔 사람처럼,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굳게 믿을 때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는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제는 홀로 그 어려움과 맞닥뜨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나요.

: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갈망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늘 행복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경력, 사치품, 권력, 재산, 명성과 같이 우리가 흔히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만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서만 행복을 찾으면 결국 실망하고 맙니다. 궁극적으로 완전한 행복은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열망하지만, 우리는 종종 하느님에게서 달아나기도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온갖 것을 다 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찾지요. 우리 삶에는 어려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이 이스라엘 백성을 기다린 것처럼, 하느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결말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어내셨고, 우리를 아시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을 믿는 데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하느님과 트윗을] (5) 진리란 무엇인가요?


: 진리란 무엇인가요.


: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37-38 참조)

많은 사람이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진리란 사유와 대상의 일치입니다”라는 답을 찾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이나 견해를 바꿉니다. 이때 달라지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과 사유하는 방식은 둘 다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감각(실증적 진리), 숙고(철학적 진리), 그리고 하느님이 드러내 보이시는 신앙(신학적 진리)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경험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이것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결부시킴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 나만의 진리일까요, 절대적 진리일까요.

: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주 진리에 관해 이야기하시며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8,32 참조) 당신에 대해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고 하셨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예수님이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완벽하게 이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진리이십니다.

 

진리에 대한 짧은 우화를 소개합니다. 시각 장애인 여러 사람이 인도 왕의 궁전에서 처음으로 코끼리를 마주하고 손을 내밀어 코끼리를 만졌습니다.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벽만큼이나 깨끗하다고 말했습니다. 코를 만진 사람은 뱀 같다고 했습니다. 엄니를 붙잡은 사람은 창처럼 끝이 뾰족하다고 말했고, 꼬리를 잡은 사람은 밧줄처럼 가느다랗다고 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리일까요?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인도 왕은 어떻게 보면 모두가 옳지만, 그 시각 장애인들이 저마다 발견한 것을 모두 합해야만 코끼리에 대해 완전한 진리에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코끼리에 관해 서로 다르게 말한다고 해서 코끼리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코끼리에 대해 지니는 주관적인 생각은 서로 다를지라도, 궁전에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코끼리 한 마리가 있을 뿐입니다. 결국, 진리는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도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는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진리의 단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주관적)에 달려 있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객관적)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사셨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복음의 진리는 더 명확하고 확실해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당신의 초대를 받아들이기를 바라시는 분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발견하게 될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