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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1) 삶과 영성

참 빛 사랑 2017. 4. 21. 11:44

성모 신심과 프란치스칸 영성으로 성인의 길을 걷다

▲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



교회의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보여준 경이로운 업적과 신앙의 증거는 많은 사람에게 공경과 추종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동시에, 초자연적이고 초인격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표상 앞에서 현실의 인간 모습과 동떨어진 듯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성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현실의 삶 속에서도 실제로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해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 신부는 모든 신자가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성인의 길은 몇몇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열려 있음을 주장한다. 콜베 신부는 그것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대한 완전한 봉헌’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온 삶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극적인 순교의 원동력


콜베 성인의 면모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폴란드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사제로서 ‘성모기사회’라는 신심 단체의 설립자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체포되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1941년 7월 어느 날(보통 30일이나 31일쯤으로 추정), 그가 머물던 14호 막사에서 수용자 한 명이 탈출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를 잡아들이는 데에 실패하자 독일인 간수는 연대 책임을 물어 같은 막사에 수용된 이들 중 열 명을 뽑아 아사형(굶겨 죽이는 형벌)에 처한다. 콜베 신부는 그 열 명 중 한 명인 ‘프란치스코 가요브니체크’를 대신해 아사형을 자청한다. 그는 보름 가까운 시간을 아우슈비츠의 아사 감방에서 혹독한 고통 속에 보낸 후, 1941년 8월 14일 석탄산 독주사를 맞고 순교한다. 이 극적이고 숭고한 그의 순교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사람이 됐다.

이것이 콜베 신부에 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가 삶의 마지막에 보여준 영웅적인 순교의 모습이 그의 전부가 아니다. 그의 순교는 그가 일생 걸었던 신앙 여정의 최종 열매이며 결과물이다. 콜베 신부는 다른 평범한 이들과 똑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했고, 똑같은 나약함과 불확실성 속에서 삶과 신앙의 여정을 갔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죽음을 통해 열 배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따라서 그의 순교를 이야기하려면, 한 평범한 인간을 순교로 이끈 그 삶의 여정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성모께 의탁한 성인

콜베 신부를 순교자로 만든 삶의 바탕은 그의 특별했던 마리아 신심과 그가 수도자로서 받아들였던 프란치스칸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성모님과 프란치스코에 의해 양육되었고 한 인간으로, 사제 수도자로 자랐고, 마침내 성인이 됐다. 물론 성모님과 프란치스코에 의해 양육된다고 해서 모두가 콜베 신부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그 양육의 손길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완전히 의탁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콜베 신부는 완전히 의탁했다. 특히 성모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의탁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측면만이 아니었다. 인간적 측면에서 실제 사도직의 모든 계획까지도 성모님께 완전히 맡겼고 성모님의 이끄심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성모님, 우리가 시작한 이 일이 장래 어떻게 될지 저는 헤아릴 수 없으나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저와 우리 모두를 사용하소서. 사랑하올 원죄 없으신 성모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 저를 받쳐 주시는 당신의 원죄 없으신 손길을 멈추신다면, 저는 첫째로 가장 큰 대죄에 빠질 것이며, 그 다음에는 지옥의 심연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부당하여도 당신께서 저를 버리시지 않는다면, 당신께서 저를 인도해 주신다면 저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위대한 성인이 될 것입니다.”

콜베 신부가 살았던 당시의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퍼져나간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에 넘쳐 있었으며, 더는 인간 역사 속에서 종교가 설 자리가 없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신의 존재란 과거 지성이 부족하던 시대에 의탁할 곳을 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반교회 급진주의자들과 교회 분열주의자들의 공격으로,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고 수도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였다.

그는 교회의 이 위기를 직시하고 꿰뚫어보면서,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궁극의 승리를 이룰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가장 완전한 해결책과 무기를 성모님에게서 발견했다. ‘불순명의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순명의 어머니’ 성모님뿐임을 강하게 확신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성모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양육될 것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서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으며, 세상의 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콜베 신부의 이런 이상은 그가 설립한 ‘성모 기사회’의 정신에 그대로 반영된다.

‘성인’이 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다. ‘성인의 길’은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이어져 있다. 가장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길은 바로 성모님을 통하는 길이다. ‘성인’이 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는 이미 성인의 길에 서 있으며 그의 영혼은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콜베 신부는 말한다.

“우리가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것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더욱 완전하게 예수와 아버지 하느님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2) 두개의 관

붉은 관과 백색 관 들고 발현한 성모, 소년의 선택은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는 1894년 1월 8일 폴란드의 작은 도시 ‘즈둔스카볼라’에서 가난한 방직공이었던 ‘줄리오 콜베’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널리 알려진 ‘막시밀리안’이라는 이름은 수도명이며, 어릴 적 이름은 ‘라이문도’였다.

그의 부모는 가난했지만 정직한 사람들이었으며, 깊은 가톨릭 신앙을 지녀 자녀들 신앙 교육에 무척 엄격했다. 특히 어머니 ‘마리아 다브로프스카’의 다정하고도 철저한 교육은 어린 라이문도의 인격적, 종교적 심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콜베 신부는 어머니와 특별한 유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 모성상이 마리아 신심의 심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허약하지만 깊은 신앙 지닌 소년


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리했지만 여느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분별력이 부족하고 때때로 심한 장난과 반항으로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병약한 몸 때문에 ‘마멀레이드(레몬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나이에 보기 드문 신앙심을 보이며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라이문도의 마음을 뒤흔들고 큰 변화를 가져왔던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성모님 발현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이는 콜베 신부가 순교한 후에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알려진 이야기인데, 콜베 신부의 평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로 유명하다.

어느 날 심한 장난을 친 라이문도는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으며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어린 라이문도의 마음을 파고들며, ‘정말로 나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됐다. 당시 라이문도의 집에는 ‘검은 마돈나’로 알려진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Matka Boska Czstochowska)를 모신 작은 제단이 있었는데, 그는 때때로 그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기도하곤 했다. 그날도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홀연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붉은 관과 백색 관을 들고서 그에게 ‘라이문도야, 너는 어떤 관을 가지고 싶으냐’라고 물으셨다. 라이문도는 ‘둘 다 주세요’라고 응답했고 성모님은 곧 웃으면서 사라졌다.

붉은 관과 백색 관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붉은 관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하는 순교를 의미하며 백색 관은 하느님에 대한 큰 사랑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 나아가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실제로 콜베 신부가 이 두 개의 관을 모두 받았음을 알고 있다. 그는 성직자로서 그리고 프란치스칸 수도자로서 백색 관을 받았으며,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죄수를 대신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쳐 붉은 관을 받았다.

이 일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성모님 앞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성모님이 제시한 두 개의 관을 모두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태도는 평생토록 일관되게 이어졌고, ‘성모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는 그의 신조가 됐다. 그는 모든 일에 그것이 성모님의 뜻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렇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간적인 고려나 근심 걱정 없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콜베 신부에게 성모님은 모든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며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선택이나 타협도 없었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자기 자신을 무제한으로 봉헌한다는 것은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로든 떠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선교의 길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바라심이라면 오늘 걸어서라도 모스크바나 마드리드로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한번이라도 ‘그러나’라는 말로 거역하거나 주저한다면 그 봉헌은 무제한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모 신심으로 몽상을 현실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이런 철저한 봉헌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현실 감각이 부족했거나 막연히 꿈이나 환상을 좇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수도회 형제들은 그를 일컬어 ‘몽상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하는 말이나 계획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훗날 그가 일본 선교를 결정했을 때, 형제들은 폴란드 속담을 빌어 ‘삽자루로 달을 때리려고 한다’고 비웃었다. 실현 불가능한 어림없는 일을 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콜베 신부가 일본 나가사키에 처음 도착해 나가사키교구장을 만난 이후에, 교구장은 그의 비서에게 “저 사람은 천재 아니면 미친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그에게는 분명 몽상가와 같은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일방적으로 ‘몽상가’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자신이 말한 모든 꿈 같은 계획들을 현실에서 모두 완벽하게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 세 살에 여섯 명의 형제와 함께 창설한 ‘성모 기사회’는 급속하게 성장하였고, 그가 창간한 「성모의 기사」지는 10년 만에 폴란드에서만 매달 100만 부씩 출판됐다. 그가 세운 폴란드 성모의 마을 ‘니에포칼라누프’는 10년 만에 형제들 숫자가 800명에 육박했고, 일본 성모의 마을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 모든 사업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은 물론이다.

콜베 신부를 가까이서 바라본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그가 철저한 ‘전략가’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며, 전략을 통해서 목적을 이루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신적 섭리에 의탁해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하느님의 뜻 앞에서는 마음을 비울 줄도 알았다.

콜베 신부는 몽상가였지만 현실주의자였고, 관상가였지만 활동가였다. 그는 허약하고 병약했지만 놀라운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고, 강력한 지도자인 동시에 유순한 종이였다. 그는 치밀한 전략가인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단순했으며,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프란치스칸의 가난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수도자의 삶을 잃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두 개의 관을 모두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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