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당뇨병
당뇨병은 핏속의 포도당 농도가 증가하는 병이다. 피는 우리 몸 구석구석을 돈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 몸 속의 모든 세포는 높은 포도당 농도(고혈당)에 노출된다. 정상적인 세포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고혈당이 매우 심하면 급성으로 문제가 발생하며, 당장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고혈당이 지속되면 만성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합병증이라고 부른다. 고혈당이 생기는 원인 또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당뇨병이라는 이름 아래에 수많은 형태의 각기 다른 당뇨병이 있다. 그래서 당뇨병은 천의 얼굴을 가진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혈당이 올라가는 이유를 알아보자. 우리 몸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호르몬이라고 함)은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베타세포가 만들어 낸다. 베타세포는 소화효소를 만드는 작용을 하는 췌장 속에 작은 섬 모양으로 흩어져 있는 췌장 소도(小島)에 위치한다. 인슐린은 근육과 지방 세포에 작용하여 혈액 속의 포도당을 잘 섭취하여 이용하도록 한다. 마치 휘발유를 자동차의 엔진으로 밀어 넣는 역할과 비슷하다. 이러한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또는 인슐린이 잘 작용하지 않으면 몸이 고장나서 혈당이 올라간다. 휘발유가 엔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자동차가 달리지 못함과 비슷하다.
인슐린이 모자라거나 인슐린이 잘 작용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다양한데, 이를 바탕으로 당뇨병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성인의 몸 속에 있는 이토록 소중한 베타 세포를 다 모아도 1-2 그램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몸의 면역계가 이 소중한 세포를 나의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인식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자가면역이라고 한다. 자가면역에 의해서 베타세포를 남의 세포라고 생각해서 집게로 집어내듯이 싹 솎아 내어버리는 병이 제1형 당뇨병이다.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가 없으므로 혈당은 끝없이 올라가서 사람을 하루 아침에 생사의 기로에 서게 만들 수도 있다.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베타 세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인슐린 분비가 부족하거나 또는 인슐린의 작용이 약해진 상태(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함)가 되면 혈당이 상승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은 대개 중년 이후의 뱃살이 넉넉한 사람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나이가 들고 비만해지면서 우리 몸이 고장나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것을 제2형 당뇨병이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보는 당뇨병의 90% 이상이 제2형 당뇨병이다. 성인 10명 중 1명이 이 병을 앓고 있다. 가족 중에 당뇨병이 있는 경우 그 위험은 2-4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 제2형 당뇨병 환자는 비만에 의한 각종 다른 대사 질환을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 고지혈증과 고혈압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이 고혈당, 고지혈증, 고혈압 삼총사가 함께 다니는 것을 “대사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제2형 당뇨병은 진행성 질환이다.
베타세포 기능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처음 진단을 받고는 대개 식이요법 운동요법만으로도 조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곧 약을 써야 한다. 그리고는 약 용량을 올려야 하고, 다른 약을 추가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10년 정도 경과하면 인슐린을 주사해야 혈당이 조절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따라서 제2형 당뇨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당뇨병이 있고, 가장 흔한 당뇨병 유형인 제2형 당뇨병은 점차 진행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정말 다양한 모습의 당뇨병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한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당뇨병의 합병증은 주로 혈관을 침범한다. 온 몸의 혈액이 모두 달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눈, 콩팥, 신경으로 가는 작은 혈관에 문제가 발생하는데, 혈관 크기가 작다고 해서 미세혈관합병증이라고 부른다. 당뇨병은 실명의 가장 흔한 원인이며, 신장 이식이나 투석 치료를 필요로 하는 말기 신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당뇨병은 교통사고를 제외하면 사지를 절단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된다. 말초신경 이상으로 말미암아 발에 감각이 없어서 다쳐도 다친 줄 모르고 곪아도 곪는 줄 모르는 것이 원인이 된다. 또한 대혈관합병증이라고 하여 심장, 뇌, 다리로 가는 동맥에 병을 일으킨다. 동맥경화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죽상경화이다. 죽모양으로 생긴 걸쭉한 기름 덩이가 혈관에 쌓여서 혈관이 좁아지고 결국은 막혀서 사달을 낸다. 결과적으로 심근경색, 뇌경색, 말초동맥폐쇄를 만든다.
이처럼 당뇨병의 유형과 합병증을 조합해보면 가히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첫째는 예방이다. 특히 과체중 혹은 비만인 경우는 체중을 조절함으로써 예방 할 수 있다. 당뇨병이 일단 발병하면 올바른 식이요법 운동요법을 통해 혈당을 일정 수준 이하로 조절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약을 복용하여야 한다. 먹는 약만으로 안되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최근 기술의 발달로 큰 불편이나 통증없이 주사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혈당 조절과 함께 고혈압, 고지혈증 관리도 매우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뇨병 관리에서 한 가지 특징은 의사는 방향만 제시할 뿐 실제 실천은 환자 자신이 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곧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겠지만 한두 달 반복하다 보면 좋은 습관이 배게 되어 큰 노력 없이도 슬기롭게 당뇨병을 이겨낼 수 있다.
당뇨병 환자분들은 대부분 경구 약이나 주사 치료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생활습관 교정을 수행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일부 당뇨병 환자분들은 약에만 의존하고 식사요법과 운동요법을 등한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십년간 익숙해진 식사와 운동의 생활습관을 교정한다는 것은 실제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당뇨병 환자분들이 궁금해하고, 또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식사 요법과 운동 요법의 원칙과 요령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당뇨병 환자분들은 하루 세끼 식사마다 고민합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지? 이것은 필자가 진료 시 흔히 받는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당뇨병에 특별히 좋거나 특별히 나쁜 음식은 없습니다.
당뇨병 환자분들이 반드시 먹어야 하거나 반드시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대신 규칙적인 식사습관을 통해 본인에게 알맞은 양을 섭취하고 다양한 식품군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본인에게 알맞은 열량과 밥량을 알기 위해서는 영양사와 면담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뇨병을 처음 진단 받았거나 혈당 조절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본인의 식사습관에 문제가 없는지 영양평가를 받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를 통해 본인이 섭취하고 있는 열량이 적절한지, 당질이 너무 많이 포함되지는 않는지, 채소는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 등을 고루 살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주요 식품군인 6가지 식품군(곡류군, 어육류군, 채소군, 지방군, 과일군, 우유군)을 골고루 섭취하고 있는지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당뇨병 환자분들은 곡류군과 지방군의 섭취를 조금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채소군에 포함되어 있는 섬유질은 당질의 흡수를 떨어뜨리고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섭취를 늘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과도한 음주, 염분 섭취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본인에 적절한 밥량에 맞게 밥을 담고, 반찬은 전통 한정식처럼 다양하게 구성한 뒤 모든 반찬을 순서대로 돌아가며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혈당 조절이 원활하지 않은 환자분의 경우 식사 후 과일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과일은 당질이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에 사과 1개 이내 또는 귤 3-4개 이내 정도의 양이 적당합니다. 또한 과일은 주스를 내어 마시기 보다는 통째로 먹는 것이 섬유소 섭취 면에서 바람직합니다.
외식이나 회식을 할 때는 가능하다면 본인에게 당뇨병이 있다는 것을 미리 주변에 알리는 것이 메뉴 선택 및 과도한 음주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회식을 할 때는 생선이나 샤브샤브 처럼 지방이 비교적 적고 채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 본인에 알맞은 양을 미리 계획해야 합니다. 회식이나 외식 후에는 다음날 운동 양을 늘리거나 식사량을 조금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설탕 음료는 가급적 피하고 아메리카노 커피, 녹차, 홍차, 생수 등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뇨병 환자분들이 운동요법을 수행하는 데에도 몇가지 원칙과 요령이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분들은 일반적으로 주당 150분 이상의 중등도 강도 이상의 운동을 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한번 시행한 운동의 효과는 2~3일 정도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연속하여 2일 이상 운동을 쉬면 안 됩니다. 일주일에 3~ 4일 정도, 하루 30~40 분씩 운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등도의 강도는 본인의 최대 심박수(220 – 나이)의 50~70% 정도에 도달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50세의 경우 심박수가 (220 – 50) x 0.5~0.7 = 85~119회/분 정도에 도달하는 운동의 강도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운동으로는 빠르게 걷기가 대표적이며 약간 숨이 차오르고 땀이 나는 정도입니다. 운동 중에 노래를 불러봐서 숨이 차지 않고 편안하다면 운동의 강도가 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활동량 측정계, 심박수 측정계, 스마트워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운동을 지속하고 운동량과 빈도를 기록하는 데 좋겠습니다.
당뇨병 환자분들이 꼭 해야하는 운동의 종류가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운동의 종류는 빨리 걷기, 조깅, 수영, 에어로빅, 싸이클 등 본인이 즐기면서 장기간에 걸쳐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선택 가능합니다. 운동은 힘들고 재미 없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친구, 가족,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면 흥미를 돋우고 동기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많은 당뇨병 환자분들의 어려움은 매일 매일 30~40 분의 운동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하루에 4번 10분씩 운동을 나눠서 하는 것도 40분 연속으로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무 중 10분씩 짬을 내 제자리에서 앉아 일어서기를 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충분한 운동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30분에 한번 정도는 일어나 가벼운 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에는 낮은 강도부터 시작하고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분은 의료진과 상의하여 안전하게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식사 요법과 운동 요법의 원칙과 요령들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다만 이는 일반적인 권고 사항이므로, 각자의 기호, 생활습관, 환경에 맞는 개별화된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본인의 운동량, 식사량, 혈당 측정 결과를 잘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3개월 마다 측정하는 당화혈색소가 본인의 목표 안에 들어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식사 요법과 운동 요법을 지속한다면 당뇨병을 원활하게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곽수헌 교수는 조기 인슐린 분비능력의 저하가 한국인의 발뇨병 발병에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에서 진료 및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