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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국외)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21. 카르멜 산

참 빛 사랑 2015. 6. 20. 10:27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21. 카르멜 산


 

하느님의 포도밭 카르멜 산 정상에서 바라본 이즈르엘 평원.


우리말 '포도밭'을 뜻하는 히브리말 '케렘'에서 유래한 카르멜(하느님의 포도밭)산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카이사리아에서 하이파 만까지 이스라엘 북서부로 길게 뻗어 있다. 해발 546m 최고봉에서 동쪽으로 이즈르엘 평원이, 서남쪽으로 샤론 평야가 펼쳐져 있다.
 

▲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를 칼로 치는 모습을 재현한 석상.


팔레스타인 지역 대부분 산은 '민둥산'인데 카르멜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다. 또 남서면의 가파른 언덕 곳곳에는 동굴들이 많아 고대 구약시대 때부터 주거지와 은신처로 이용됐다(아모 9,3). 이 동굴들에선 기원전 4000년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팔레스타인 지역민들 집터와 무덤들이 발굴됐다.
 
카르멜산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이 산에 산당을 짓고 제단을 세웠다. 기원전 1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와 람세스 2세, 람세스 3세는 문헌에 '거룩한 산'이라 기록했다.

▲ 거짓 예언자들이 바알에게 제물을 태울 불을 내려달라 기도하지만 뜻대로 되지않아 낙담하고 있다. 카르멜 산 수도원 벽에 새겨진 부조.

 
구약성경도 카르멜 산이 우상숭배의 중심지였고,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예언자 400명과 대결해 참 하느님을 증명한 장소라고 기록하고 있다(1열왕 18, 20-40).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예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됐다. 불안정한 정국을 겪던 북이스라엘은 제6대 오므리 왕 때에 가서 겨우 왕정을 확립했다. 기원전 860년 오므리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아합은 지중해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정략 결혼해 국력을 강화했다. 이제벨 공주가 시집올 때 시돈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 신앙을 들여와 북이스라엘에 퍼뜨렸다.
 
사실 바알 신앙은 모세 시대 이전부터 가나안 땅에 퍼져 있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의 아들도 '바알의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스바알'(1역대 8,33)이었다. 이스라엘 탈출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이스라엘 민족이 '폭풍과 비의 신'인 바알과 '풍요의 여신' 아세라의 우상에 현혹된 것은 아마도 정착민으로 유목과 함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풍요를 염원했기 때문일 것이리라.
 

▲ 카르멜 산 수도원 제단. 엘리야 예언자가 12개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을 형상했다.


해발 482m 지점 카르멜산 등성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무흐라카'(불의 제단)를 쌓아 바알의 거짓 예언자와 대결했다는 장소가 있다(1열왕 18, 20-40). 유다인들은 12개 돌로 쌓은 이 '엘리야 제단'에 순례를 왔고, 초대교회 신자들도 이 산을 경건히 여겨 570년부터는 은수자들이 들어와 수도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르멜 수도원의 기원이 됐다. 무슬림들도 이곳을 찾아와 엘리야 예언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기도 촛불을 밝혔으며, 십자군들도 엘리야 제단이 있던 터에 성당을 세웠다. 이 성당은 오스만 튀르크 군에 의해 폐허가 됐으나 19세기 초반 남자 가르멜 수도원이 들어와 지금까지 성지를 보존하고 있다.

▲ 카르멜 산에 있는 수도원 지붕 십자가. 카르멜 산은 초기 교회 은수자의 기도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