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접어드는 동안 교회는 이미 ‘초고령교회’라는 현실을 먼저 마주했다. 2019년 한국 교회는 전체 신자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5%를 넘기며 ‘초고령사회’ 기준을 충족했고, 2021년에는 수원교구가 이 기준에 도달하면서 전국 교구가 모두 초고령화 상태에 들어섰다.
2024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50세 이상은 45.2%인데 반해, 천주교 신자 중 50세 이상은 54.4%에 달한다. 본당 활동의 중심이 50대 이상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고령화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사목 방향과 공동체 구성·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핵심 과제가 됐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서울 신수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 어르신들이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은빛학교 발표회’를 열고 있다.
교회의 초고령화 고령화와 젊은층 이탈은 세계적 추세 독일 등 시니어 사목팀 구성 이탈리아, 지역 내에서 노인 모임 강화
성당 시니어아카데미 맞춤형 신앙 교육과 교류의 장 제공 세대간 소통에도 기여 영시니어와 올드시니어 서로 도와
세계 교회의 고령화
교회의 초고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교회 역시 고령화와 젊은 세대의 이탈이라는 이중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업체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 신자의 58%가 50세 이상이며, 이 중 51~65세가 전체 신자의 30%를 차지한다. 유럽 교회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본당별로 ‘시니어 사목팀’을 구성했고, 독일 울리히 붐 주교는 “노인 사목의 초점을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지역 기반 공동체 안에서 노인을 위한 기도 모임과 돌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는 오는 10월 로마에서 제2차 노인 사목 국제회의를 열고,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돌봄 사목의 방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서울 성산2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 어르신이 직접 만든 선물과 과자를 미사 후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한국 교회의 응답, 시니어아카데미
한국 교회 역시 노인 사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사목적 실천을 모색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시니어아카데미’(노인대학)가 있다. 각 교구는 노인사목부를 중심으로 지구와 본당 차원에서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신앙 교육과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은 월례교육을 통해 성경과 레크리에이션, 만들기 등 노인 사목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강사 뱅크’도 마련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 강사를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로 파견하고 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들에 맞는 ‘방문 피정’과 ‘방문 교리’를 실시하면서,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나 복음적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동반하고 있다.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 노인사목부는 팬데믹 시기 노인 돌봄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를 제안해 어르신들에게 매일 아침 문자를 발송하도록 각 본당에 안내하기도 했다.
서울 노인사목팀 담당 나종진 신부는 “노인대학이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신앙 정체성을 중심에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신수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는 성경 공부를 주축으로 미술·만들기 등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활동을 병행하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고연정(헬레나) 학장은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성경 공부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회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통합’이다. 가정사목부와 노인사목부 담당을 역임한 김청렴 신부(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국 부국장)는 “전 연령층과 만나다 보니,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생애를 거쳐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며 “배움과 활동의 욕구, 신앙에 대한 갈망 등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세대 간 특성에 맞는 통합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교회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제안했다.
서울 성산2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는 세대 간 소통에 나섰다. 과자와 키링 등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한 선물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 미사 후 전해주는 등 일상 속 소소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윤주(글로리아) 부학장은 “어르신들은 성당에서 손주 만나는 기분도 느끼고 있고, 학생들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좋아 성당 가는 게 기다려진다는 말까지 할 정도”라고 전했다.
세대가 연결되는 교회
하지만 모든 본당이 같은 수준의 사목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노인사목팀과 의정부 노인사목부가 2023년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본당 시니어아카데미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봉사자의 절반 이상이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을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았다. 강사 섭외 문제가 뒤를 이었으며, 교육 자료 부족 또한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게다가 본당 내 봉사 대부분이 무보수 자원 활동으로 이뤄지기에 봉사자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교회 봉사자의 일면을 보면, 소위 ‘일당백’이다. 이윤주 부학장은 “어르신들 웃음 한 번 보는 걸로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간다”며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봉사자도 시니어라는 사실이다. 50·60대가 주축이 돼 70·80대 어르신을 섬기며, 세대 간 고리를 이어간다. 고연정 학장은 “어르신들은 50·60대인 우리에게 볼 때마다 예쁘다는 말을 해주신다”며 “서로를 향한 사랑의 힘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영’시니어가 ‘올드’시니어를 위해 봉사하면서 함께 살아나는 셈이다.
의정부교구 평내본당 성가정대학(노인대학) 어르신들이 본당 교우 배정국 관장의 재능기부로 태권도 수업을 하고 있다.
다시 주인공
“하나둘!” “셋 넷!”
70·80대 어르신들의 힘찬 구령 소리가 태권도장에 울려 퍼진다. 의정부교구 평내본당 성가정대학(노인대학) 학생들의 모습이다. 자세는 완벽하지 않지만, 열정만큼은 선수급이다.
태권도장을 시작한 지 36년, 남양주시 평내동에서만 21년을 운영해온 배정국(대건 안드레아) 관장은 “지금껏 분에 넘치게 받았으니 돌려주자는 차원에서 2년 전부터 본당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건강이 좋아진 건 물론이고 자녀들이 본당에 고맙다고 인사할 정도로 삶에 활력이 넘치게 됐다.
김영호(야고보, 79)씨는 “우리 나이에 운동이라야 걷기 정도고, 체력이 좋으면 등산을 하지, 태권도는 상상도 못 해봤다”며 “다시 인생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사회에서 은퇴하고, 교회에서도 중심 역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이들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또 본당에서 인사 정도 하던 사이가 함께 운동하고 대화도 하면서 도장은 친교의 장이 되고 있다. 입소문이 나 타본당에서 오는 이들도 여럿 생겼다.
올해 64세로 시니어에 접어든 배 관장은 “일선에서 물러날 계획을 하면서 이분들과 평생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재능기부지만, 받는 사랑이 더 많아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밝혔다. 다시 주인공이 된 ‘올드’ 시니어와 주인공을 만들어주면서 의미를 찾은 ‘영’ 시니어, 이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존재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건전한 가치관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시니어들이 사회에 있다면, 교회는 나이를 초월한 신앙 공동체 자체로 그 모범을 보여준다.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여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쇠퇴를 의미하진 않는다. 삶의 지혜와 신앙의 깊이를 지닌 이들이 교회 안에서 빛날 수 있도록, 교회는 이들과 함께 걷는 여정이 돼야 한다. 신앙 공동체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이자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이 말은 슬로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