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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교황 선종-교황과의 추억] 교황 말씀은 쉬웠다... 신학도 그러길 바라셨다

참 빛 사랑 2025. 5. 5. 10:47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정제천 신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래 글씨는 교황이 남긴 친필 메모. 정제천 신부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상 순례 여정을 마무리하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모습은 전 세계 모두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아있다. 특별히 한국을 사랑하고 아꼈던 만큼 많은 한국인에게도 그와의 인연과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교황 방한 당시 수행비서 겸 통역 맡은 정제천 신부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수행비서 겸 통역을 맡은 전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 현재 필리핀 소재 동아시아 사목연수원(EPAI) 원장으로 재임 중인 정 신부는 “교황께서는 한국인이 부지런하고 신심이 깊고 잘 단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특별히 사랑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셨고, 남북통일을 위한 노력을 격려하셨다”며 “짧은 시간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저력을 인정하시면서 그 성장과 발전의 그늘을 직시하는 한국 교회가 되길 바라셨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행동하는 선교사’로 가장 먼 거리를 여행한 교황이었다”며 “가난한 이들의 교황으로 사셨고, 이웃종교와의 대화에도 진심이었던 교황의 관심과 사랑의 범위를 벗어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교황의 말씀은 쉬워서 좋았다. ‘양 냄새 나는 목자·야전병원·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용서하는 데 지치지 않으시는 하느님’ 등 쉬운 표현을 쓰셨으며, 신학도 그러기를 바라셨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교황께선 우리 인류가 같은 배에 타고 있는 운명 공동체라고 힘줘 말씀하셨다”며 “우리가 이 깨달음을 살아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교황께선 주님 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김유민 학생 아빠 김영오씨

노란 리본 달고 오셔서 
힘 났고 감격스러웠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23일 경기 시흥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교황 방한 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였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진정한 어르신이자 진정한 종교인인 교황의 선종 소식에 가슴이 아프고 먹먹했다”고 애도했다.

김씨는 4월 23일 자신이 제작에 나선 세월호 참사 다큐 ‘제로썸’ 상영회 전 본지와 만나 “교황은 제가 제일 의지했던 분인데, 선종하셨을 때 딸이 세상을 떠난 것 다음으로 허망하고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교황을 마주했던 상황을 추억하면서 “교황께서 카퍼레이드 당시 처음에 저희를 못 보고 지나치셨고, 행사 전에 교황의 손을 잡지 말아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면서도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셔서 저희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으며 보듬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손만 잡아줘도 고마운데 노란 리본을 달고 오셔서 힘이 났고 감격스러웠다”며 “그때 받은 위로와 사랑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희 수녀 /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먼저 다가오시던 자상한 모습
교황 되셔서도 그대로

 
1993년 4월 30일 베르골료 주교(프란치스코 교황) 숙소 앞에서 교황과 함께 사진을 찍은 성가소비녀회 수도자들. 앉은 이 중 왼쪽이 최정희 수녀.



22년 전 아르헨티나에 파견돼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보좌 주교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처음 만난 최정희(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는 “교회 장상이라기보단 자상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주교라는 위치에 계신데도 먼저 다가오셨던 자상한 모습은 교황이 되셔서도 이어졌다”며 “수도회(예수회) 출신이셔서 저희 수도자를 무척 잘 이해하시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황께선 보좌 주교 시절부터 양들과 함께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고, 그들과 아픔·기쁨을 나누시는 순간을 행복으로 삼으셨다. 그 삶을 교황이 되고 나서도 사셨다”며 “사제들 역시 훌륭한 주교와 함께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그분의 삶을 본받아 스스로 변했다”고 전했다.

최 수녀는 1993년 4월 플로레스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였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교황) 주교 초청으로 동료 수도자 2명과 해당 지역의 테오도로 알바레스 시립병원에서 원목활동을 했다. 한국인 교포 출신으로 당시 이 병원 원목 사제로 사목하던 교구 소속 문한림(현 아르헨티나 베나도투에르토교구장 주교) 신부가 다리를 놨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플로레스 지역은 대표적 한인 거주지 ‘백구촌’(109번 버스 종점인 데서 유래)이 있는 곳이다. 11년간의 선교를 마치고 2004년 한국으로 돌아온 최 수녀는 “이 지역은 한국 신자도 많았고, 교황께선 한국 사회를 잘 아시는 편이었다”면서 “낯선 아르헨티나에서 살아가는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보살펴주신 교황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바티칸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한 한진섭 요셉 조각가

제 손 꼭 잡아주시고 
엄지손가락 세워 ‘최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진섭 조각가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벽감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요셉) 조각가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한 작가는 2023년 9월 16일 김대건 신부 성상 축성식 때 교황청 사도궁 내 클레멘스홀에서 교황을 알현했다.



한 작가는 “교황님이 두 손으로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최고’라고 말씀하셔서 ‘600년 동안 비어있던 성 베드로 대성전의 중요한 장소에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세울 수 있게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면서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성상에 조각된 한국 전통 의상인 두루마기라고 얘기했더니 교황님이 다시 한 번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당시 교황이 축사에서 2014년 8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때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를 방문하고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평화의 씨앗이 된 이야기를 다시 언급한 모습도 떠올렸다. 한 작가는 “교황님이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계시고 존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그래서 유흥식 추기경님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상을 세우자고 건의했을 때 교황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교황님은 한국의 선교사들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김대건 신부처럼 평화의 사도가 되길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 특별대담 ‘당신과 함께한 시간’

한반도 평화에 깊은 관심
방북 의지 강하셨다

 
교황 선종 특별대담으로 기획한 ‘당신과 함께한 시간’에서 출연자들이 교황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로마에서 유학한 방종우(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신부, 로마 수도회 총원에서 6년간 생활한 김영미(마리 루치아,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세계주교시노드 커뮤니케이션팀에서 봉사한 청년 정태영(베드로)씨다.

3년간 주교황청 대사를 지낸 이백만 전 대사는 교황 방북 협상의 비화를 담은 책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를 출간했다. 교황 선종 11일 전이었다. 이탈리아어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는 ‘나는 갈 것이다’란 뜻으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전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에 응하며 한 말이다.

이 대사는 “평양에는 공식적인 가톨릭 사제가 없어 누가 교황님을 맞이할 것인지가 문제였지만, 교황님은 ‘나는 교황이기 전에 선교사다.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셨다”고 당시 일화를 전했다.

로마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한 방종우 신부는 “사제에게도 교황님을 만나는 것은 꿈 같은 일”이라며 “교황님은 미사 중 준비된 원고를 읽다가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면 늘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신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교황님은 악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희망이 있는 한 그것이 우리를 지배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며 “희망을 꺾는 일에는 단호하셨고, 희망을 북돋우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서셨다”고 전했다.

정태영씨는 지난해 10월 2~27일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에서 ‘시노드 커뮤니케이션팀’ 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는 “회의가 오전 5시에 시작되면 교황님은 30분 먼저 오셔서 대의원과 봉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대화해주셨다”면서 “2023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파견 미사에서도 교황님은 150만 명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제게 직접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김영미 수녀는 “교황님은 한반도 평화에 늘 깊은 관심을 갖고 기도해주셨으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도록 이끌어주셨다”고 말했다. 김 수녀는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한국 주교단의 기억

“미소는 최고의 선교
 소통은 주님의 은총”

 
2024년 9월 20일 한국 주교단이 사도좌 정기 방문 중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제공

한국 주교단에게는 지난해 9월 20일이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주교단은 9월 16~22일 로마를 공식 방문, 교황을 알현했다. ‘앗 리미나’(Ad limina Apostolorum)로 불리는 5년 주기 사도좌 정기방문 자리였다.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형제처럼 맞았다. 마련된 물병과 화장실 위치까지 직접 알려주면서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서 다 필요하다”며 편안한 분위기를 먼저 선사해줬다. 앗 리미나 직전 4개국 순방을 하고 온 상황임에도 당초보다 길어진 90분을 넘기며 대화했다. 주교들은 당시 교황의 한국을 향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다시금 느꼈다.

주교들은 자상한 아버지이자 마치 형제 주교를 만난 듯 교황에게서 거듭 깊고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 주교단은 교황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 교회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나누며 새로운 사목적 지향과 위로를 얻은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게 “분단된 한국의 상황은 큰 고통이며 내게 큰 상처를 남긴다”면서 “여러분의 고통을 저도 잘 알고 있으며 이 상황이 빨리 개선되고 종결되도록 저도 기도하겠다”며 남북 관계 개선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아울러 한국 교회의 선교 정신에도 깊은 감사를 전했다. “미소는 최고의 선교입니다. 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 주교였을 때 한국 여성 수도자(성가소비녀회)들이 선교사로 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오자마자 병원사목을 하셨는데 스페인 말을 하나도 못했지만 미소로 사람을 대했고, 사람들이 그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교황은 “여러분의 사제들과 수도자·선교사들에게서 선교의 열정이 느껴진다”며 “선교 정신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은 “선교사는 주교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라 교구에 보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어떤 주교는 전임 주교가 해놓은 것을 존중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황은 시노드 교회에 관한 질문에 “시노달리타스 정신 안에서 주교와 수도회 장상들의 능력은 신자들의 말을 듣고 함께 일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며 ‘소통은 주님의 은총’임을 강조했다. 교황은 “오늘날 교회의 명작인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선교」를 읽고 또 읽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황은 앞서 기후 위기에 관한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후속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달라면서 “몇몇 신부님들이 왜 생태 이야기를 하느냐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 어머니인 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깨우기 위해선 생태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주교가 아시아 사목 방문 성과를 묻자, 교황은 “아주 놀라운 여행이었고, 아름다웠다”고 답했다. 이어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그곳에 있는 선교사들의 선교 정신이었다”며 “도끼로 나무를 치면서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었고, 바닷가도 있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여행은 힘들어서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교회의 보편성을 더 이해하게 되고, 토착화된 교회를 보게 된다”며 “문화를 복음화하고, 신앙을 토착화하는 것 두 가지를 보게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황은 재위 12년 동안 68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 주교단을 만나기 직전에는 12일간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을 순방했다.

교황은 알현 후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한국 주교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으며, 군종교구장이라고 소개했던 서상범 주교에게는 알현 끝에 거수 경례를 먼저 건네는 넉넉하고 유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이학주 기자 goldenmouth@

이준태 기자 ouioui@

윤하정 기자 mo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