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라산 정상 올려다 보이는 캠핑장
청소년·청년 위한 ‘제주 별장’ 표방
산티아고 순례길 숙소처럼 내부 꾸며
“방황하는 한 청년과의 만남 계기
이야기 들어주고 머물 공간 만들게 돼
제주에 혼숨 2·3호점 만드는게 꿈”
본지는 새해 희년과 함께 어느 때보다 용기가 필요한 젊은이들을 위한 코너 ‘젊은이여, 용기를 내어라’를 비정기 연재한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주제 성구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처럼 교회 안팎에서 나름의 열정과 용기로 살아가는 젊은이와 그들에게 힘을 북돋는 이들의 삶과 신앙을 만난다.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공간 ‘혼숨’
“아⋯ 파⋯ 트⋯. 아⋯ 파⋯ 트⋯♬. 이 템포 아니잖아요. 요즘 부르는 ‘아파트’요. 이건 과장님이나 부장님들이 부르는 노래잖아요. 주중 6일 동안 삶의 현장에서 힘들었던 청년들이 성당에 왔는데, ‘어~ 왔어? 하면서 자, 이제 1~2시간 잘 버텨봐’하는 거예요. 재미없는 강론에 장송곡 같은 성가로요.”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중퇴하고 ‘수사님’이라 불리는 50대 아저씨를 한라산 중턱에서 만났다. 제주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을 운영하는 혼숨지기 박우곤(알렉시우스, 53)씨. 2006년에 제주도로 들어왔지만 ‘육지 사람’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진짜 필요한게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교회는 젊은이들이 왜 줄어드는지 박사님들과 신부님들 불러서 세미나를 하죠. 그런데 주일학교 학생은 왜 계속 줄어드나요? 정작 불러야할 청소년과 청년은 왜 발표자로 안 모시는 건가요?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가 현장에 전달이 안 된다고요? 아니에요. 청소년·청년 사목을 학문으로만 접근하니까 그런 거예요.”
화가 난 건 아니었다. 20년 넘게 생활성가 가수로 활동해온 덕에 울림통이 크다. 교회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목청이 커진다.
“지금 현재 청소년과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과 공감해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청소년 사목 열심히 하는 신부님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신부님과 저는 차이가 있어요. 저는 아무것도 준비 안 해요. 신부님들은요, 주임 신부님·사목위원들과 상의해서 예산 받고 프로그램 다 짜놔요. 그리고 ‘얘들아! 여기에 이렇게 만들어왔어, 와~’ 하시죠. 짜인 틀에 젊은이들을 끼워 넣는 거예요.”

청년들의 제주 별장, 혼숨
2023년 10월에 문을 연 ‘혼숨’은 오고 싶을 때 와서 편안하게 머물다 가는 ‘제주 별장’을 표방한다. 바쁜 삶에 지친 청년들이 자연 안에서 숨을 고르는 캠핑장이다.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먹고 싶은 건 해먹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는다. 숙박비는 2만 원. 떠날 때는 처음처럼 깨끗하게 해놓고 가면 된다. 잠은 텐트나 실내에 마련된 침대에서 잘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숙소 ‘알베르게’처럼 꾸며놨다. 최대 50명이 동시에 묵을 수 있다.
700평 부지의 혼숨은 제주교구 서귀포본당이 관할하던 가나안공소였다. 제주에 교통이 발달하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 됐다. 이 공간이 혼숨으로 재탄생한 건 박씨가 한 청년을 만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박씨는 혼숨에 오기 전 2년간 이시돌 피정센터에서 제주자연순례피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 청년이 피정 후에 더 머물고 간다는 거예요. 그 청년은 삶에 큰 상처가 있었는데, ‘신앙으로 극복하려 해도 쉽지 않고,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막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제주 밤하늘의 별을 보여줬어요.”
박씨는 눈물 흘리는 청년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줬을 뿐이었다. 박씨는 기쁨의 눈물을 닦고 다시 용기 내 일어서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고 무릎을 쳤다. 지치고 힘든 청년들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머물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힐링’이었다.
가톨릭문화기획 IMD 대표이기도 한 박씨는 가톨릭문화기획 IMD 지도 사제인 현요안(제주교구 복음화실장) 신부에게 청년 이야기를 전했고, 결국 교구장 문창우 주교에게 전달되어 혼숨이라는 공간이 탄생했다. 교구는 무상 임대로 가나안공소를 내줬고, 교구 가톨릭경제인회가 리모델링 비용 7700만 원을 쾌척했다.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200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혼숨에서 머물렀다. 한라산 정상이 올려다보이는 잔디 너른 캠핑장에서 청년들은 도시에선 누리지 못할 삶을 만끽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었다. 누구는 영상으로 릴스를 만들고, 게임과 축구·농구도 했다. 호젓하게 홀로 와서 잠만 실컷 몰아서 자고 가는 청년도 있다. 별이 뜬 제주의 밤하늘 아래에 모여 장작불도 피우고 이야기도 나눈다.
“여기 오는 젊은이들이 무얼 자주 물어보는지 아세요? ‘이거 해도 돼요?, 저거 해도 돼요?’ 이런 질문들이에요. 그동안 이들에게 ‘안 돼’가 많았잖아요. 회사에서 11개월 버텼는데 정규직 되기 직전 회사에서 잘려 상처받고 온 친구들도, 여기에 오면 내일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를 물어요. 마음대로 자라고 하죠. 절대 안 깨우니까.(웃음)”


청년들의 ‘형님’ 되고파
그는 고향이 서울이다. 결혼도 했고, 고등학생 아들도 있다. 목재업을 하다가 2002년부터 생활성가 가수로 활동해왔다. 그가 처음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2006년 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에 몸담고 있을 때 제주교구 성령쇄신봉사회 서 청년들을 위한 기도모임 준비를 도와주면서였다. 당시 제주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담당 사제였던 현요안 신부가 2007년 제주에서 열린 제1회 한국청년대회(KYD) 기획을 담당하면서 함께하게 됐다.
그는 20년 동안 문화 사목에 동반하며 기획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삶에는 늘 젊은이들이 따라다녔다.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젊은이들을 위한 기획을 했다. 2008년에는 사도 바오로의 해를 맞아 현 신부와 함께 뮤지컬 ‘이마고 데이’를 한국과 미국·필리핀 등 무대에 올렸다. 지금은 현 신부와 함께 ‘별별미사’와 ‘노을미사’를 공동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별별미사는 매 주일 저녁 8시 별 뜨는 제주 밤하늘 아래(김기량 순교기념관 야외마당)에서, 노을미사는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노을 떨어지는 함덕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봉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크게 내세울 건 없지만 가톨릭교회 안에서 이력은 칸이 모자랄 정도예요. 쉰이 넘은 나이에 청년처럼 살 수 있는 건 하느님 은총의 힘이죠. 되든 안 되든, 항상 새로 도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어요.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느님이 채워주셨기에 여기까지 왔죠.”
그는 제주에 혼숨 2, 3호점을 만드는 게 꿈이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때 외국인 청년들에게 혼숨을 개방해 제주의 자연과 성지, 제주에 머무는 하느님의 숨결을 선물하고 싶다.
“요즘 수사님이라고 많이들 부르시거든요. 근데 아저씨라는 호칭이 제일 맘에 듭니다. 하하. 사실 ‘형님’이 제일 좋아요. 청년들의 형님이 되면 좋겠어요.”
혼숨 예약 문의 : 010-3220-1605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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