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지내는 3년 동안 2~3개월마다 돌아오는 남편의 출장은 다시 없을 나홀로 여행의 찬스였다. 나는 배낭을 메고 주로 북이탈리아의 도시들을 돌아다녔는데, 깊은 인상을 받은 곳 중 하나가 볼로냐였다.
사실 볼로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넘어 오랜만에 고국에 온 한 이탈리아인의 고향 자랑에 혹하여 별다른 계획 없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볼로냐에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서 도심 워킹투어를 신청했는데, 그룹 지어 다니는 세 시간 동안 내 시야에 꽂힌 것은 저 멀리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이었다.
그곳은 성 루카 복음사가가 그렸다고도 하는 성모자의 이콘이 모셔진 성소였다. 900여 년 전 한 순례자가 이 성화를 현재 튀르기예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발견해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하는데, 버스로 오르막을 오르자 점차 카메라 앵글을 벗어나는 거대한 성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소는 볼로냐 전체를 굽어보는 듯했는데, 더 인상적인 것은 성소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주랑(柱廊)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에 걷다 서기를 반복하며 4㎞에 달하는 회랑을 내려가다 보니, 성소와 도심을 잇는 길을 기둥과 붉은벽으로 이토록 정성스럽게 만든 이유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약 600년 전, 4~6월에 걸친 폭우로 작물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 볼로냐 사람들이 성화의 성모님께 청원을 드리자 비가 그쳤다고 한다. 볼로냐 사람들은 그 후로 주님 승천 대축일에 맞추어 성화를 시내의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모시고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 긴 주랑은 성화 행렬을 따라 성모님의 은총을 간구하던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몽골의 침입 앞에 부처님의 보호를 간구하며 팔만 장의 불경을 새기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몇 달 후, 다시 찾은 볼로냐에서 나는 성 루카의 성모님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성모님을 보았다. 바로 돌아가신 예수님 주위에서 살로메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클로파스의 마리아와 함께 절규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이었다. 막달레나 마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듯 옷자락이 휘날리고, 클로파스의 마리아는 현실을 부정하듯 양 손바닥을 펼쳐 시야를 가린 채 소리치며 몸을 돌리는 듯했다. 그리고 성모님은 주체하지 못할 고통과 슬픔에 몸이 기울어진 채 두 손을 서로 꽉 부여잡고 목놓아 울고 계신 듯했다. 나는 충격과 비통에 잠긴 마리아님들에게서 매정하게 등을 보일 수 없어 한참이나 그 앞에 서 있었다.
볼로냐에서 만난 두 성모님은 너무 대조적이었으나, 우리가 성모님께 매달리고 간청드릴 수 있는 것은 피가 끓고 살이 찢기는 고통을 오롯이 겪어내신 분이시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성모님만큼은 나의 고통을 알아주시리라고, 그래서 부족한 나일지라도 그 품 안에서 토닥여주시리라고 말이다. 성당을 나서자 마침 졸업 시즌을 맞은 근처 볼로냐 대학생들이 화관을 쓰고 왁자지껄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새로운 인생길 굽이굽이 우여곡절을 겪게 될 그들에게도 항상 성모님의 자비와 은총이 함께하시길!
송영은(카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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