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맞벌이 부부의 가슴 아픈 출근전쟁이 또다시 시작됐다. 아이 때문에 밤잠을 설친 아내를 조심스럽게 깨운다. 아이가 깰까 봐 수화로 대화하며 출근 준비를 마치면 아이도 잠에서 깬다. ‘으앙~’ 울먹이며 아내에게 돌진한다. 7시, 아이를 돌봐주시는 할머니가 집에 도착한다. 아이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또다시 긴 이별이 시작된다.” 28년 전 한 잡지에 기고한 육아일기의 한 대목이다.
쏟아지는 저출생 대책을 볼 때마다 두 아이를 양육하던 1990년대 중·후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가?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키우면서 한국의 양육 환경을 진단하는 보도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 본사 기자에게 물었다. 부모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도 출퇴근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자신을 돌봐줄 장소로 이동하거나 집에서 양육자를 맞이한다. 아이도 부모도 고단함과 아쉬움에 지친다. 둘째 아이는 언감생심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 0명대 출산 기록으로 국가존립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정부가 인구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부총리급의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방침을 밝혔다. 저출생 극복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아 부처별로 흩어진 정책을 모으고 실패한 정책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16년간 280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는 더 암울하다. 통계청이 전망한 올해 합계 출산율은 0.68명이다.
지금까지 저출생 정책은 백약이 무효였다. 출산 지원금과 육아휴직 급여를 늘리고 주거 마련 혜택을 주는 등 현금성 지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육아휴직 제도는 직장이나 노동 유형별로 차이가 있어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학생 부부 등은 혜택에서 제외되거나 제한됐다. 모든 지원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사각지대가 해소돼야 정책의 실효성이 확보된다.
저출생은 출산 장려 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 사회의 제반 영역이 출산과 양육 친화적인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고용 안정성이 확보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지역별 교육 격차가 해소돼야 한다. 각종 조사를 종합해보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과 육아휴직 후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휴직 후 복귀하면 똑같은 노동시간이 주어져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한국의 부모는 자녀를 직접 키우지 못한다. ‘할마’·‘할빠’·‘주말 부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주말에만 엄마·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부모 대신 손주의 양육을 조부모가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부모가 미취학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 OECD 국가 평균인 150분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특히 아빠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6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 부부들은 잠깐 아이를 보는 ‘시간제 부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임금이 적더라도 경력 단절이 없는 근무시간 단축을 원한다. 부부가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해 아이와 많은 접촉을 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일과 육아가 부부의 삶에서 ‘고통’이 아닌 ‘기쁨과 행복’이 될 것이다.
28년 전 육아일기 마지막을 다시 인용한다.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를 사랑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아이에게 애정을 듬뿍 전하는 것이고, 셋째는 부모가 지녀야 할 자세와 각오가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가 아무리 힘들어도 생명의 가치와 가족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는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부모가 아쉬움과 죄책감으로 바라보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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