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온 사제가 상태가 위중한 피해자에게 병자성사를 베풀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 현장 접근을 불허했다. 그 신부는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묵주기도를 바칠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는 그가 숨을 거둔 뒤에야 도착했다.
지난해 10월 15일 영국 액세스 레이 온 시(Leigh-on-Sea)에서 실제 발생한 일이다. 범죄 피해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아메스(David Amess) 의원이다. 유권자들과 간담회를 하던 중 변을 당한 아메스 의원은 안타깝게도 성사의 은총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영국 가톨릭교회와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사제가 병자성사를 집전하지 못한 것을 두고 몇 차례 논쟁을 벌였다. 경찰은 범죄 발생 장소에 출동하면 외부인 출입을 막고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는 게 대응 지침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교회는 병자성사에 대한 경찰의 몰이해 때문에 아메스 의원이 마지막 순간에 병자성사의 은총을 누리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병자성사는 임박한 죽음을 앞둔 신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주님께 그의 구원을 맡겨드리는 성사다.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참회하고, 사제의 도유(塗油)를 통해 구원의 희망을 얻는다.
경찰은 결국 이 지침을 검토한 끝에 범죄 현장 대응 지침을 일부 변경했다고 최근 밝혔다. 살인이나 다른 폭력의 희생자가 범죄 현장에 남아 있는 경우 성직자가 접근해 종교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나이젤 파커 영국 가톨릭 연합 사무총장은 “경찰 당국이 사제의 존재와 병자성사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며 “명확하고 합리적인 지침을 만들어준 실무그룹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아메스 의원 살해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는 소말리아 혈통의 영국인 하비 알리(26)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따르는 그는 경찰 진술에서 아메스 의원이 시리아 공습에 찬성해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