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알았던 B씨를 우연히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는데 돌연 그에 대한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순간 기분이 나빠지면서 ‘아직도 그때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뱉어낸 말이 맴돌았다. “다른 사람들이….” 평소 겁이 많던 B씨는 자신의 불만을 ‘다른 사람’의 말로 나에게 전했다. 당시 젊었던 나는 지나친 책임감을 느껴 그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주지 못했지만, 그러면서도 익명을 끌어들여 나를 ‘험담’하고 공격의 수위를 높였던 그의 행동에 몹시 분개했던 기억이 있다.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 그리고 험담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험담’을 험담 대상에게 직접 전달하는 건 두 번 죽이는 행위다.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말 세 가지가 있다. B씨처럼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여긴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말이다. 두 번째는 험담을 전하면서 뒤에 따라오는 말이 있다. “사실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이다. 이 말은 비겁하다 못해 비굴하다. ‘나는 이런 말이나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며 자신을 방어하는 말이다. 동시에 ‘하지만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어’ 하면서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는 말이기도 하다. 아주 질이 나쁜 세 번째 말은 상대방의 인격을 무참하게 무너뜨리고 나서 “물론 나는 당신을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하지만….” 이는 ‘나의 말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는 거야’ 하면서 자신만 쏙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이는 익명의 사람들을 ‘화살받이’로 내몰고 자기만 도망가는 꼴이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말’로 이웃을 해치는 것을 함께 두고 말씀하신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재판에 넘겨지고, 형제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마태 5,21-22 참조)이라며 단호하게 경고하신다. 살레시오 성인은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방하는 말은 사람을 죽이는 ‘대죄’라고 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인격을 죽이는 것 모두 큰 죄라는 의미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싸우는 일도 곤욕스럽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공격을 받는 것은 더 큰 상처가 된다.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악성댓글을 달거나 듣지 않는 곳에서 험담하고, 그것을 공격의 도구로 삼는 일은 비겁한 행위다.
험담은 천하고 비루하다는 한자 ‘비(卑)’와 두렵고 겁 많은 ‘겁(怯)’과 같다.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의 천하고 비루한 말이라는 뜻이다. 험담하거나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겁이 많아서일까.
가끔은 ‘왜 본인만 모르지?’ 하는 왜곡된 정의감에 ‘당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은 다 안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의 인격을 죽이는 말이다. 나의 이름과 나의 말, 내 생각을 전해야겠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당신이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껴”라고.
나 역시 B씨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험담’하지 않으려면 그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내 생각과 마음을 전해야겠다.
진짜 용기가 필요하다.
성찰하기
7 상대에 대한 불편함을 ‘다른 사람이…’라고 전하기보다 ‘내 생각은…’ 하고 용기 있게 말해요.
8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변명하기보다 ‘이 말은 내가 꼭 해야겠어요’라고 말하세요.
9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이 아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내 생각은 이래요’라고 해요.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들을 때 ‘말하는 사람과 듣는 나 그리고 그 대상’에게 진심 어린 축복의 기도를 보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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