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1)사랑보다 필요를 원하는가?.

참 빛 사랑 2018. 9. 10. 20:30




7살 여자아이가 낡고 꾀죄죄한 인형을 소중하게 안고 다녔다. 가만히 보니 코도 떨어져 나가고 옷도 너절해서 엉덩이가 다 보일 정도였다. 아이에게 “인형이 나이가 많아 보이네”라고 하자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인형을 등 뒤로 감추며 단호히 말했다. “1살 때부터 내 친구라고요!” 아이는 인형을 버리라는 말을 이미 많이 들은 것 같았다.

아이에게는 그 인형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이다. 어린왕자에게는 어떤 아름다운 장미보다 자신이 키운 장미가 더 소중하듯 아이도 자신의 인형을 어떤 인형과도 바꿀 수 없다. 아이는 마치 어린왕자처럼 ‘소중함을 만드는 것은 내가 쏟은 그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그 인형과 대화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엄마가 자리를 비운 허전하고 외로운 자리를 늘 인형이 대신해 주었으리라. 비록 불안정한 애착으로 생긴 집착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 어차피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그런데 갈수록 우리는 불완전함을 버티는 힘과 의지가 약해지는 것 같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요즘 사랑은 유효기간도 짧아진 듯하다.

몇 년 전, 영국에서 인공로봇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됐다. 늘 바쁘게 살던 엄마를 대신해 가정용 인공지능로봇이 한 가정에 들어온다. 가족은 일도 잘하고, 식사도 완벽하게 준비하는 로봇에 열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려 하자 아이는 로봇이 읽어주는 것이 더 좋다며 이렇게 말한다. “로봇 아니타는 절대 서두르지 않아.”

그렇다. 로봇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흥분하지 않아 엄마처럼 야단치거나 서두르지도 않는다. 게다가 강하고 빠르며, 못 하는 것이 없다. 엄마보다 아이를 더 잘 돌보고, 부탁받은 것도 절대 잊지 않는다. 하지만 로봇은 감정이 없어 사랑을 주지 못한다. 드라마 속 가족은 엄마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는 사랑이 아니라, 필요만을 채워주는 완벽함을 원한 걸까?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은 “기술에 대한 기대는 늘어나고, 사람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편리한 수단을 원한다. 스스로 노력해 소통하기보다 기술의 힘을 빌려 쉽게 소통하려 한다. 이런 관계에 익숙해지면, 불편하고 아픈 사랑은 인내하지 못한다. 고독과 외로움, 슬픔과 두려움을 견뎌내지 못한다. 노력해서 힘들게 지켜야 하는 순결한 사랑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나 너 사랑해”라는 말은 ‘네가 살아온 삶의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고 싶다는 고백이다. 또한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결혼이요? 그런 거 왜 해요. 혼자 사는 것이 이렇게 편한데요.”

젊은이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요즘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고, 원하면 적당히 연애도 할 수 있단다.

그래도 나는 고집스럽게 말하고 싶다. 사랑만큼은 불편하면 안 될까? 사랑만큼은 다 낡고 떨어져도 소중히 껴안으면 안 될까? 사랑만큼은 죽을 것 같아도 버티고 지켜주면 안 될까? 사랑만큼은.



성찰하기



1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2 불편하면 사랑이 아니라고 의심한 것은 아닐까요?

3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요.

‘참고 기다리며,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고, 뽐내거나 교만하지 않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1코린 13,4 참조)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