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한껏 멋을 내고 왔다. 평소 옷차림과 달라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J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오늘은 기죽으면 안 되는 모임에 나간다”고 말한다. 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명품을 걸쳐줘야 한다”며 가방까지 흔들어 보였다. 내 눈에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J는 브랜드 이름까지 말하면서 고가의 명품임을 힘줘 말했다. 가격까지 알고 나니 그 가방이 뭔가 달라 보이긴 했다. 함께 들었던 생각은, 가방이 물건이라기보다 J의 권위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라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한다. 가방, 옷, 차와 집 등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보이는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때론 진짜 ‘나’에 대한 신뢰보다는 보이는 ‘이미지’에 의해 불안해하고 신경 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회에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로 인해 혼란스럽다. 이미지는 실재를 반영하지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는 것을 은폐하기도 한다. 작은 것을 크게 부풀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인 양 조작하기도 한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고가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첫 번째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과시형’, 두 번째는 나는 못 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이 강한 질시형’, 세 번째는 초라한 자신을 사치품으로 감추려는 ‘환상형’, 마지막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동조형’이라고 한다.
이 분류는 명품 소비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영성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밤샘기도를 하면서 ‘나는 남과 다르다’며 과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라고 못 할 것 없지’하면서 열등감을 만회하려 하지는 않은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과하게 선심을 쓴다거나 그저 친구가 좋아 신심 단체에서 활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레시오 성인은 “한순간의 기도와 자선으로 대단한 ‘나’가 된 듯한 ‘가짜’에 속지 말라”고 말한다.
스스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면 명품이나 외모로 인정받고 싶어 할 것이다. 나를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겉모습을 치장하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살레시오 성인은 “내 것이 아닌 것, 내 것일지라도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닌 걸 자랑하는 것은 외적 교만과 허영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훌륭한 말을 타고 아름다운 새털 모자와 화려한 옷을 입고 뽐낸다. 그러나 실로 자랑해야 할 것은 말이고 새이며, 재봉사다”라고 말했다.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파트를 건축한 노동자를, 그리고 멋진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 차를 제작한 근로자들을 자랑해야 한다. J는 자신이 자랑한 명품 가방을 만든 장인을 자랑해야 했다.
사실 명품은 장인의 정신이 제대로 녹아 있어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인간을 창조한 장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니 나를 자랑하려면 먼저 하느님을 자랑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하느님이 만드신 모습 그대로, 자기답게 살아야 한다.
보이는 이미지가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워도 충분한 진짜 나일 것이다.
성찰하기
1. 나는 스스로와의 관계에서 어떠한가요?
2. 나는 나인 것에 만족하나요? 나는 나인 것이 행복한가요?
3.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안심하는 편인가요?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4. 하느님은 본래 나를 좋게 만드셨습니다. 이 확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신뢰하고 나답게 살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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