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0)마음은 마음에 이야기한다.

참 빛 사랑 2018. 9. 3. 17:25





영성 공부를 하기 위해 국제 공동체인 미국 버클리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만난 미국인 폴은 아직도 인상 깊게 떠오른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이 나에게 폴을 이렇게 소개했다.

“폴은 책임감이 무척 강해요.”

“성실하기 이를 데 없고요.”

“머리도 비상하고 검소해요.”

그런데 며칠을 지내며 느낀 건 그를 칭찬했던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사 때 그의 옆자리는 가장 늦게 온 사람의 몫이었다. 단체로 외출할 때는 여러 대의 차에 나눠탔는데 폴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마지막에 온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타는 모양새였다.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폴에게 사람들이 좀처럼 가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어느 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표현은 어설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폴이 끼어들었다. 그는 우리를 한 명씩 바라보면서 “당신은 발음이 틀렸어요.”, “그 맥락에서 그 단어는 적절치 않아요.”, “당신의 말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돼요”라며 지적했다.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식탁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 이후 나 역시 폴이 있는 자리에 가까이 가는 게 꺼려졌다. 어쩌다 같이 앉게 되면 긴장했고, 말을 할 때면 정확한 문장을 떠올리느라 그와 마음으로 소통하기 힘들었다. 그는 단어와 문장을 정확하게 말해야만 알아들었고, 완전한 문장이 될 때까지 다시 묻곤 했다. 분명 그가 밉거나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게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폴을 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폴은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알고 있을까?’ 폴은 다른 사람의 반응과 느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다가오는 폴은 정말 자유로운 사람인 걸까? 폴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반응으로부터 자유롭다기보다 아예 차단하고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타인의 시선과 감정을 느끼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싫어하는 것을 거둘 줄 아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마음으로 소통한다. 서로 간의 소통은 ‘말’보다는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폴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듯 보였다. 누군가 그에게 “나는 지금 말을 하는데 당신은 강의해요?”라며 독설을 퍼붓는데도 폴의 표정만으로는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불편하다고 하소연하는 상대방의 마음과 그 말을 듣는 폴의 마음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보였다. 폴은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마음’의 교류를 이뤄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폴의 성실한 행동을 칭찬했지만, 마음으로는 그의 존재를 멀리했다.

살레시오 성인은 “사람들과 마음의 교류를 이뤄내는 것이 최고의 덕”이라고 했다. 돈보스코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얻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시작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음만이 마음에 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성찰하기



1 지나치게 신념이 강하면 ‘마음’을 외면하게 돼요.

2 옳고 그름이 마음의 교류를 이뤄내지 못하면 ‘잔소리’가 되고요.

3 입을 열면 마음도 함께 열렸는지 성찰해보세요.

4 “혀는 귀에 이야기하지만, 마음은 마음에 이야기해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