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 보면] (25)나에게는 친절한, 너에게는 완고한 두 개의 마음.

참 빛 사랑 2018. 7. 31. 21:56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 친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고, 배신감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수녀님의 생각이 옳아요” 하며 힘주어 말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아니라던데”라는 말을 했을 때,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은근 시비를 걸며 저항해올 때, 위선과 거짓을 보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그럴 때면 마음이 차가워진다. 마음이 두 개로 갈라진다.

‘너는 참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네.’

‘아냐. 어쩌면 그 사람의 말이 바로 성령의 소리일지도 몰라.’

‘뭐야? 분명 내 앞에서 한 말과 다르잖아. 비겁해.’

‘아냐,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그에게 생겼는지도 몰라.’

이렇게 마음이 서로 갈라져 싸우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이를 중재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온다. ‘어쩌면 말이야. 내가 이렇게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그들이 쏟아낸 말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편이기를 바라는 편협한 내 생각 때문인지도 몰라.’

그렇다. 내가 모든 사람 앞에서 똑같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듯 남들도 역시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음은 움직이는 거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언젠가 나는 함께 일하는 A에게 편지를 써놓고 출장을 떠난 적이 있다. A가 가끔 감정조절을 못 해 같이 일하는 M이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 관계만 안 좋아질 것 같아 글로 남기기로 했다. 나는 이 편지에 A도 M도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진심을 담아내려 했다. 출장을 다녀온 후 편지를 읽은 A의 반응이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통해 “A는 절대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수녀님이 오해한 것이라고 펄펄 뛰더라고”라는 말이 들려왔다.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직접 본인의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A와 차 한 잔 마시면서 “연애편지 받았으면 답장 줘야죠.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한 것이….” 하며 말을 건넸다. A는 멋쩍어하더니 미소를 살짝 지었다. “아녜요.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제 꼬락서니를 모르겠어요. 노력해야지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나는 순간 매우 기뻐 날아갈 것 같았다. 감사했다. 그가 한 말이 진심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편지를 본 순간에는 저항이 올라와 참을 수 없어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 험담한 것도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잘해보겠다고 한 이 말도 그의 진심이라고 믿는다.(이후 놀랍게도 그의 태도가 아주 부드러워졌다.)

나 자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에게는 “K씨가 왜 그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라고 불평하지만 정작 K씨 앞에서는 “당신을 이해한다”고 할 때가 분명 있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 정말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나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움직이다가 두 개가 되기도 하고 세 개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용서하고 관대하고 순응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화나고 억울하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다만 이 두 개의 마음이 출렁이며 움직일 뿐이다.

그렇기에 움직임의 방향을 잘 조정할 필요가 있다. 마음이 자꾸 내 쪽으로만 가려 하니까. 나 자신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완고하게 기울어지니까. 그러니 서로 다투고 방황하면서 두 개로 나뉘어도 모두 내 마음이니 품고 사랑해야겠다.

갈라진 마음을 인정하고 품어주고 사랑하면 흔들려도 기우뚱거려도 깨지지는 않을 테니까.



성찰하기

하나는 부드럽고 친절하며 호의적이고 또 하나는 딱딱하고 엄하며 혹독해요.

작은 결점을 한 이웃을 비난하면서 더 많은 과오를 범한 자신에게는 변명하려 하죠.

이웃에게는 싸게 팔고 비싸게 사라며 ‘자비’를 베풀라 하고 나는 비싸게 팔고 싸게 사면서 ‘정의’라 합니다.

내가 내뱉는 말들은 좋게 해석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의 작은 비난의 말에는 예민하게 대응해요.

나의 권리를 빠짐없이 주장하고 챙기지만, 이웃의 권리는 무시하려 해요.

다른 사람이 나를 겸손하게 대해주면 좋아하면서 나는 퉁명하고 불손하게 행동합니다.

그래요. 나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하게 이웃에게는 엄격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기울어지는 두 개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두 개여도 사랑하겠습니다. 내 마음이니까. 다만 두 개의 마음이 서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