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세계교회(국제)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제1장 말씀의 빛 안에서 ③ (19~30항)

참 빛 사랑 2016. 7. 25. 18:35

교황이 말하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범







“네 손으로 벌어들인 것을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이 있어라. 네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 둘레에는 아들들이 올리브 나무 햇순들 같구나”(시편 128,2-3).

모든 가정이 이 시편 구절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혼인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예비부부나 신혼부부의 축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혼에 관한 논쟁의 맥락에 들어 있음을 주목한다(마태 19,3-9 참조).

실제로 성경을 읽어보면 수많은 곳에서 가족 관계에서의 고통과 피 흘림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인의 아벨 살해는 그 시작일 뿐이다. 예수님 또한 태어나자마자 이집트로 피난 생활을 해야 하는 운명을 겪으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정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신다. 술이 떨어진 혼인 잔칫집의 당혹스러움을 해결해 주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내용을 일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은 일련의 추상적 관념들이 아니라 어려움과 고난을 체험하는 모든 가정을 위한 위로와 동료애의 원천”(22항)이라고 제시한다.

우리네 가정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들은 가족 간의 관계에서만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 곧 노동과 관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동은 단순히 원죄의 대가가 아니다. 노동은 그 처음부터 인간 존엄성의 본질에 속한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는 말씀처럼,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자연을 가꾸고 돌본다. 이를 통해 가족을 부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을 도모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도 나오듯이 일거리가 없어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마태 20,1-16 참조). 오늘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실업으로 인한 빈곤은 가정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죄의 결과로 인한 인간 이기심과 욕망은 자연을 파괴하고 사회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이것이 예언자들이 고발하고, 예수님께서 규탄한 불의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통들을 안고 있는 가정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줄 수 있는 표징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사랑의 계명을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그들의 삶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 원칙”이라고 이해한다. 실상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야말로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사랑은 또한 자비와 용서에서 결실을 맺는다”(27항).

자신을 내어주는 이 사랑은 그리스도교적 혼인과 가정생활에 대한 체험에 중심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와 함께 중요한 한 가지 덕목을 더 제시하는데 다정함(살가움, 부드러움)이다. 실상 바쁘게 움직이고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돌아가는 현대의 삶에서 다정함은 곧잘 간과되기 십상이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와 같은 살가움은 시편 저자가 하느님과 하느님께 성실한 이들과의 관계를 나타내고자 사용한 이미지다(시편 131,2 참조).

성경에 나오는 혼인과 가정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본 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렇게 규정한다.



1.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가정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합일을 이루는 모습대로 그 구성원들이 인격적 친교를 이루어야 한다.

2. 가정이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하느님의 창조 활동을 반영한다. 이 가정은 ① 매일 기도를 바치고 ② 하느님 말씀을 읽으며 ③ 미사에 참여하고 ④ 그리하여 사랑에서 성장하고 갈수록 더 온전히 성령이 거처하시는 성전이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29항).



교황은 나아가 모든 가정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보고 배워야 한다면서 특별히 마리아의 모범을 닮기를 권고한다. “마리아처럼, 우리 가정들은 순경에서나 역경에서나 용기 있고 평온하게 가정의 도전들을 대면하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일들을 가슴에 간직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30항).



다시 한 번 성찰하자. 우리 가정은 삼위일체의 친교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 가정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바라보며 특별히 마리아의 모범을 닮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