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의, 영원한 사랑·순결의 옷」 지상 전시
제의는 사제가 미사 집전할 때 가장 겉에 입는 옷이다. 사제는 제의를 입을 때 “주님, 주님께서는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하셨으니, 제가 주님의 은총을 입어 이 짐을 잘 지고 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제의는 곧 ‘예수의 멍에와 애덕’의 상징으로 ‘사랑의 옷’이자, ‘온유하고 가벼운 그리스도의 멍에’이기도 하며 ‘순결의 옷’이다.
사제가 제의를 입는 것은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사제를 일반 사람들과 구별하며 제사의 거룩함과 위대함을 표현하고 제사에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관장 배선영 수녀)이 펴낸 「제의 祭衣 casula- 영원한 사랑, 순결의 옷」은 한국 교회 제의 변천사를 망라하고 있다. 지난해 9~11월 박물관 특별전시회 때 선보였던 제의를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1886년 조선 땅에 신앙 자유가 선포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거쳐 지금까지 변화돼 온 제의를 한국 근대 복식사 안에서 조명하고, 서양 제의가 한국 고유 전통문화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을 엮었다. 소개된 제의는 모두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70년간 수집, 보관해 온 것들이다.
박물관장 배선영 수녀는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들의 고귀한 삶과 거룩한 직분을 제의를 통해 되새겨볼 수 있다”면서 “제의에 담긴 그리스도교 상징과 무늬를 통해 하늘나라 신비를 엿보는 감동과 축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1. 로마식 제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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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색 제의. 계단식 십자가형으로 장식띠 중앙에 예수 성심상을 수놓았다. 장미색 제의는 대림 제3주일과 사순 제4주일에 입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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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색 제의. 계단식 십자가형으로 장식띠 중앙에 예수 성심상을 수놓았다. 장미색 제의는 대림 제3주일과 사순 제4주일에 입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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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제의. 꽃무늬가 있는 녹색 직물 바탕에 꽃, 리본, 덩굴 무늬로 장식했다. 사제가 연중시기에 보편적으로 입는 제의다. |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교회가 설립된 후 10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박해로 초기에는 전례복 착용이 불가능했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조인된 이후 프랑스에서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해 전례복이 도입됐다. 이 시기 제의는 비단이나 값비싼 고급 천을 사용하고, 장식은 금사와 은사 외에 고급 자수로 수를 놓아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특징이다.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의 전례복을 견본 삼아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2. 그리스식 제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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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제의. 囍(희)자 무늬가 있는 우리 고유 전통 직물을 사용해 만들었고, 가장자리는 완자 무늬로 장식했다. |
전례복 간소화가 이뤄진 시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은 “성당의 기물과 제의의 재료, 형태와 관련해 이를 지역의 필요나 관습에 적응시킬 권한을 이 헌장 제22항 규범대로 지역 주교회의에 부여한다”고 했다(127항).
전례복을 만드는 소재도 전통적인 것 외에 각 지역의 고유한 천연 섬유나 인조 섬유를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도 성직자 신분에 맞는 복식을 강조했다. 이후 제의는 거의 장식이 없으며 재료도 실용적이고 활동성이 좋은 합성섬유로 만들어졌다.
3. 한국식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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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색 제의와 자색 영대. 우리나라 고유 옷인 두루마기를 제의로 형상화했다. 영대의 매듭 수는 무늬가 있는 자색 직물 바탕에 같은 색깔로 매듭장식을 하였다.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전례복은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고수하여 내려 온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이 되던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미사’를 거행할 때 로마 바티칸의 오랜 전통을 깨고 조선 시대 왕 예복인 ‘곤룡포’를 형상화해 제작한 한국식 제의를 입었다.
교황의 한국식 제의는 옷감, 모양, 장식에 이르기까지 가장 한국적으로 제작했다. 이는 한국 가톨릭 교회 전례복의 토착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현대 제의의 형태(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