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1- '주님 탄생 예고의 땅' 나자렛
사진은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는 대화 수단이다. 특히 사진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 이미지는 그 대상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어도 친근감을 주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신앙의 해를 보내며 더욱 생생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획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 기행'을 시작한다.
![]() |
▲ 나자렛의 성모상. 주님 탄생 예고 성당에 모셔져 있는 '나자렛 성모상'. 소녀티가 나는 앳된 얼굴에 결연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원(始原)인 이 믿음은 바로 이 땅 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역사적 사실이란 성경적 믿음을 위해 다른 것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징적 암호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근거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실제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을 우리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 |
▲ 주님 탄생 예고 성당. 교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을 기념해 매해 3월 25일에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지금의 나자렛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집터에 지어진 다섯 번째 성당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건축가 조반니 무치오가 설계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봉헌금으로 1954년 착공, 1965년에 봉헌됐다. 성당 지붕은 백합이 피어나는 형상으로 꾸며져 있고, 성당 한가운데 8각형의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
요한복음의 시작이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신앙 고백으로 출발한다면 마태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첫 장을 연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가계(家系)에 의해 하느님 백성의 역사 속에 편입된다. 이 분이 바로 메시아다. '예수 탄생'(마태 1,16)에 관해 마태오 복음서는 1장 18-25절에서 상세한 설명을 보탠다.
![]() |
▲ 요셉의 환시.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요셉은 꿈의 환시를 통해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한 것을 확인했고 가브리엘 천사의 요청대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지었다. 이 색유리화는 예수께서 유년시절 성장했던 성가정 집터에 세워진 '성가정 성당' 지하 동굴 제단화이다. |
![]() |
▲ 나자렛 전경.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인 나자렛은 갈릴래아 남부 산악지역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이다. 계단식 과수원과 포도밭으로 에워싸인 농촌이었다. 하지만 나자렛은 고립된 벽촌이 아니었다. 인근에 세포리스라는 큰 도시가 있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그의 영지에 재건한 행정수도였다. 나자렛은 히브리말로 '파수꾼' '지키다' '꽃에서 나온 가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이 사건 현장은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29km 떨어진 작은 마을 '나자렛'이다. 나자렛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마태 1,21-22)이라는 기쁜 소식이 선포된 현장이다. 아울러 동정임에도 성령으로 인해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 성모 마리아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드러난 장소이다. 또 실제로 동정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한 역사의 현장(루카 1,28-38)이다. 그리고 요셉은 꿈의 환시를 통해 아기 이름을 '예수'(구세주)라 지었다. 이 예수는 이사야(7,14)의 예언에 따라 인류가 기다리던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니, 당신 백성 한가운데 계실 것이고(마태 18,20),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함께 활동하실 것이다(마태 28,20).
예수 안에서 실현되는 신비,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메시지는 이렇게 첫 순간부터 들어와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하며, 구약의 하느님 백성에서 시작해 새로 형성되는 계약의 백성으로 넘어가 완성된다.
이처럼 나자렛은 주님 탄생이 예고되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며 인류 구원을 시작한 출발지로서 거룩한 땅으로서의 영원성을 지니게 됐다.
![]() |
▲ 주님 탄생 예고 성당 마리아의 집 .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동정녀의 몸에서 주님께서 탄생하실 것이라 예고한 역사의 현장이다. 성모 마리아의 집터는 초세기부터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잘 보존됐다. 신자들은 마리아 집을 보존하기 위해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제대 한가운데는 라틴말로 "Verbum Caro Hic Pactum Est"(말씀이 바로 여기서 사람이 되셨다)라는 신앙 고백문이 새겨져 있다. |
말씀이 사람이 되신 역사의 현장 나자렛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주님 탄생을 알렸던 성모님의 집(주님 탄생 예고 성당)과 유년시절 예수께서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사셨던 집터에 세워진 '성가정 성당', 공생활 중 예수께서 희년을 선포하신 시나고그(루카 4,16-22)가 남아있다.
글ㆍ 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2. '요한 세례자의 고향' 아인카렘
![]() |
▲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에 들어서면 성당 앞뜰 벽에 세계 63개국에서 그 나라 말로 보내온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 현판이 걸려있는데 우리말 '마리아의 노래'가 순례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주님을 잉태해 배가 약간 불러온 마리아와 임신 6개월째로 제법 배가 부른 엘리사벳의 청동상이 미소를 띠게 한다. |
'주님 탄생 예고' 사건이 있기 6개월 전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8㎞쯤 떨어진 유다 마을 '아인카렘'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요한 세례자 탄생 예고' 사건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루카 1,13-15).
![]() |
▲ 오늘날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은 1955년에 봉헌됐다. 성당 정면에는 주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가 천사들의 인도 아래 나귀를 타고 나자렛에서 아인카렘을 찾아 여행하는 모습이 모자이크로 묘사돼 있다. |
나자렛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무려 100㎞가 넘는 거리를 달려가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를 갖지 못했던 사촌의 수태를 축하했다. 요즘 자동차로 가면 나자렛에서 아인카렘까지 2시간여 만에 갈 길이지만, 2000년 전 나귀를 타거나 걸어갔을 마리아는 족히 사나흘이 걸려 아인카렘에 당도했을 것이다.
![]() |
▲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우물가에서 만났다고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우물 위에 성당을 지어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을 기념했다. 사진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난 장소로 전해지고 있는 우물터다. |
마리아를 본 순간, 엘리사벳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하며 감격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방문에 너무 황홀해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며 마리아와 태중의 예수를 반갑게 맞았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약 3개월간 머물렀다고 복음서는 전한다(루카 1,56).
이렇게 엘리사벳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올바로 맞이했기에 구세주를 기다리는 전 인류의 상징이 됐고, 마리아는 구원을 전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상징이 됐다.
우리말로 '포도밭의 샘'이란 뜻을 가진 아인카렘은 또한 요한 세례자의 탄생지이다. 요한 세례자는 생후 6개월 만에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를 통해 구세주 탄생을 알게 된 헤로데가 2살 이하의 아기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전승에 따르면 엘리사벳은 학살을 피하려고 간절히 기도하자 앞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면서 그 안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 기적의 바위가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에 보존돼 있다.
![]() |
▲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은 5세기경에 세워졌지만,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고 십자군 시대에 재건됐다. 그 후 사라센의 침략으로 완전히 파괴돼 폐허로 변했다. 17세기에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에서 성당 복구를 시작해 1885년에 보수 및 개축한 것이 지금의 성당이다. 사진은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 제단 모습. |
![]() |
▲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집터에 지어졌다. 제대 왼쪽 지하로 내려가면 자연 동굴이 있는데 바로 요한 세례자가 탄생한 자리이다. 이 지하 경당 제대 아래 석판에는 라틴말로 "Hic Praecusor Domini Natus est"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주님의 선구자가 나셨다"는 뜻이다. |
레바논 삼목과 소나무가 우거진 오늘날 아인카렘 마을 중심부에는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이 있고, 마을 꼭대기에는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이 자리한다. 두 곳 모두 작은 형제회 성지보호 관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3. '구세주 탄생지' 베들레헴
![]() |
▲ 베들레헴 주민은 예부터 바위동굴을 마구간으로 사용했다. 헬레나 성녀가 주님 탄생 동굴을 발굴할 수 있었던 것은 2세기 로마 군인들이 이 동굴에서 유다인들을 추방하고 예배의 기억을 없애기 위해 주님 탄생 동굴을 '탐무즈-아도니스'를 숭배하는 신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을 순례 온 헬레나 성녀는 동굴에 있는 우상의 잔재를 다 정리하고 주님 탄생 동굴을 보존하기 위해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사진은 주님 탄생 동굴 안 베들레헴 별자리 위에 마련된 동굴 제대. |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0-14).
예수 탄생에 관한 성경 내용은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만 나온다. 두 복음서 모두 예수께서 유다 지파 다윗 집안 사람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 |
▲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Hic de Virgine Maria Jesus Christus Natus est.) 놀랍고도 복된 문장이다. 이 복된 말씀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성당이 바로 베들레헴 '주님 탄생 기념 성당'이다. 이 성당에선 구세주 탄생을 기념해 매일 성탄 미사가 끊이지 않고 봉헌되고 있으며, 하루 수천 명 순례자가 성당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 있는 주님 탄생 동굴로 몰려와 '베들레헴의 별'에 손을 얹고 구세주를 경배한다. |
당시뿐 아니라 지금의 유다인들은 구약의 예언에 따라 베들레헴 출신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요한 7,42).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는 구약의 예언이 이뤄졌다.
![]() |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이후 베들레헴에 순례 와 예수님 탄생지로 전승돼 온 동굴 위에 지어 339년 5월 31일 봉헌한 성당이다. 그러나 이 성당은 화재로 소실됐고, 그 유일한 흔적으로 성당 중앙 통로 바닥의 모자이크가 있다. 지금의 주님 탄생 기념 성당은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완공한 것으로 1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다. |
유다인들이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나실 것이라고 믿는 까닭은 바로 다윗이 태어나 자란 고향(1사무 16,1-16)이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또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창세 35,19)이 있어 구약시대 때부터 성스러운 땅으로 여겼다.
구세주 탄생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해발 770m 언덕 위 작은 마을이다. 오늘날 '베이트람'이라 불리는 이곳은 성경에선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이라 했다. "과일이 풍성한 빵집"이란 뜻이다. 이름으로만 본다면 구약시대 이곳은 과일과 밀이 잘 자라는 비옥한 땅이었을 것이다. 이 축복의 땅에서 구세주께서 탄생하셨다.
![]() |
▲ 주님 탄생 기념 성당 왼편에는 188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세운 근대식 건축물인 '가타리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가타리나 성당 지하에는 예로니모 성인이 34년간 은거했던 동굴이 있다. 성 예로니모는 이 동굴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완간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불가타 역본'이다. 사진은 가타리나 성당 구유 예수로 매년 성탄 미사 때 등장하는 아기 예수상이다. |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콜로 1,16)되었지만 세상의 구원자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구세주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는 갓난아기를 구유에 뉘었다(루카 2,7).
성 아우구스티노는 '구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구유는 동물의 여물을 담는 통이다. 그런데 지금 그 구유에 자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으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참된 양식으로 드러내신 분이 누워 계신다. 그분은 인간에게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다. 이렇게 구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빵을 얻기 위해 초대된 하느님의 식탁을 암시한다."
'빵집(베들레헴)에서 참 생명의 빵이 탄생했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4.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도성
![]() |
▲ 예루살렘은 다윗 왕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아(2사무 5,9) 정치ㆍ종교의 중심지인 새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세운 도성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곽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 슐레이만 2세가 1532년부터 1539년까지 복원한 것이며 다윗 도성은 이 성곽 밖에 위치한다. 가운데 황금돔 모스크 자리가 바로 모리야 산이다. |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지성소를 모셨던 성채를 '평화의 도시''평화의 근원'이란 뜻의 히브리말 '예루살라임'이라 부른다. 우리에게 라틴말 '예루살렘'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진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앙 산악지대 기혼 샘이 있는 키드론 골짜기 서쪽 해발 760m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 유다 광야, 서로 쉐펠라 목초지, 남으로 베들레헴, 북으로 벤야민 산지가 있다.
![]() |
▲ 기혼샘 워렌 수직 터널. 1867년 영국군 워렌 대위가 발견한 이 터널은 지름 2m의 원통형 수직 터널로 적에게 성이 포위됐을 때 성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유일한 식수원인 기혼샘에서 물을 길어올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
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000년께 다윗이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 도성을 세워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왔다(2사무 6장 참고). 다윗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창세 22, 1-22) 모리야 산에 집터를 정해 '시온'이라 했고, 솔로몬이 그곳에 주님의 집을 지어(2역대 3,1)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셨으며(2역대 5,2-7.10),'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다(1열왕 8,1-66).
![]() |
▲ 토라(모세오경)에 따르면 모든 유다인 남자는 매년 초막절, 수확절, 추수절 때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했다. 13세부터 이 의무가 적용됐지만 유다인들은 이 율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12세 때부터 대부분 순례를 떠났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예수도 12세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 사진은 만 13세가 된 한 유다인 소년이 가족과 함께 토라 율법 규정을 지킬 의무를 서약하는 예식을 하고 있다. |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해 삶의 중심이 됐다. 토라(모세오경)에 따라 이스라엘 모든 남자는 해마다 과월절(파스카)과 수확절(오순절), 추수절(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탈출 23,14-17 참조). 또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루 3번씩 기도하는(다니 6, 11) 풍습이 생겨났고, 회당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지어졌다. 예수의 부모도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곤 했고, 예수도 12세 되던 해 토라에 따라 예루살렘 축제에 참가했다(루카 2, 41-42).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일 년에 세 번 성전에 감으로써 이스라엘은 순례 중에 있는 하느님 백성,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길을 가는 백성이 되며, 유일한 성전에서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체성과 단일성을 받아들이는 백성으로 머물 수 있었다"(「나자렛 예수」 2권, 168쪽)고 설명한다.
![]() |
▲ 최근 고고학 발굴로 드러난 다윗 도성 아이엘의 집 돌기둥. 이 집 형태를 보면 솔로몬 성전 시대에 유행했던 4개 방 구조를 알 수 있다. |
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 군대에 의해 모두 파괴됐고, 유다인들은 포로로 끌려가 바빌론에서 70년간 종살이를 했다(2열왕 25장).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나서 기원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했으나 가장 중요한 계약 궤를 안치하지 못했다(에즈 5,1-6,18). 왜냐하면, 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신탁을 받고 천막과 계약 궤를 들고 모세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느보 산으로 올라가 어느 동굴에 숨기고 입구를 막아 버렸는데 그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2마카 2,4-8).
기원전 37년 로마에 의해 유다 왕이 된 헤로데는 즈루빠벨의 성전을 부수지 않고 새 성전을 짓기 시작해 46년의 긴 공사 끝에 완공됐다. 헤로데 성전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이 성전은 겨우 6년 만에 폐허가 됐다. 66~70년에 일어난 제1차 유다 항쟁을 진압한 로마 티투스 황제에 의해 예수의 예언대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루카 21,6) 완전히 파괴됐다.
![]() |
▲ 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의 예언대로 모두 파괴됐다. 사진은 헤로데 성전 벽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서쪽 벽(통곡의 벽)에서 유다인들이 키파를 머리에 쓰고 기도하고 있다. |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이날은 유다력 '아브'(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론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바로 그날이었다. 유다인들은 솔로몬 성전과 헤로데 성전이 똑같이 파괴된 이 운명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으며 성전 파괴를 슬퍼하며 메시아 도래를 기도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5.올리브산
![]() |
▲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푸른 올리브나무'(예레 11,16)라 했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하며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자랑했다(시편 52,10). 사진은 겟세마니 성당 정원에 있는 올리브나무. |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동산으로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사도 1,12 참고-유다 율법은 안식일에 1km 이상 걷지 못함). 구약 시대 때부터 이 산을 히브리 말로 '하르 하 자이팀'(올리브산)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예부터 이곳에 올리브나무가 무성했음을 알 수 있다.
![]() |
▲ 올리브산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유다인에게도 성지이다. 그 이유는 즈카르야의 예언대로 마지막 날 주님께서 예루살렘 맞은 편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에 오신다(즈카 14,4)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 부활을 믿으며 이 산에 묻혔고, 지금도 묻히길 원하고 있다. 사진은 올리브산에 있는 유다인 무덤들. |
올리브산은 신ㆍ구약의 역사가 얽힌 곳이다. 다윗은 압살롬 반역을 피해 도망가던 길에 이곳을 지나갔고(2사무 15,30-32), 그의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여기에다 모압의 우상 크모스와 암몬인의 우상 몰록을 위해 산당을 지었다(1사무 11,7). 이후 유다 임금 요시야는 올리브 산의 이 산당들을 허물고(2열왕 23,13-14)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또 예언자 즈카르야는 '주님의 날'에 올리브 산에서 벌어질 일(즈카 14,4)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 |
▲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을 말씀하시고(마태 23, 37) 한탄하셨던(루카 19,41)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로마 시대 이후 항아리가 눈물을 상징하게 됐기에 1955년에 건축된 지금의 성당도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다. 성당 제대 정중앙에서 창을 통해 예루살렘을 보면 골고타 언덕이 바로 보인다. |
![]() |
▲ 예수께서 수난 전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다 체포되셨던 곳에 세워진 성당으로 현재 성당은 12개국의 모금으로 건축돼 '만국의 성당'으로도 불린다. |
![]() |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전해진 곳에 세워진 성당. 헬레나 성녀가 처음으로 이곳을 순례와 성당을 세웠고 19세기에 재건돼 현재는 프랑스 가르멜 수녀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성당 벽면에 각 나라말로 쓰인 '주님의 기도' 타일이 인상적이다. |
신약성경에서 올리브산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 이곳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루카 19, 29),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멸망을 예고하며 눈물을 흘리셨고(루카 19,41-44), 종말에 관해 설교하셨다(마르 13,3-13; 마태 24,3-14; 루카 21,7-19). 예수께서는 낮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밤에 올리브산에 올라가 쉬셨고(루카 22, 37-38), 최후 만찬 후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하느님께 기도한 후 체포되셨다(마르 14,26-50; 마태 26,31-56; 루카 22,31-53; 요한 13,36-38; 18,1-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이 올리브산에서 승천하셨다(사도 1,6-12).
![]() |
▲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이곳에서 주님께서 승천하신 것으로 보고 성전을 지었다. 비잔틴 시대 팔각형 모양의 성전이 먼저 세워졌고 십자군 시대 때 재건됐다. 현재는 무슬림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경당 안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딛고 오르셨다는 바위가 남아 있다(루카 24, 50 참고).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선언 이후 올리브 산에는 4세기 중엽부터 성당들이 지어졌는데 대표적인 4대 성당이 겟세마니 성당과 주님 눈물 성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승천 경당이다.
Ave Maria- Mirusia Louwerse
연주자 ANDRE RIEU 가 오디션 때
MOZART의 ARIA를부른 이 여인의 노래를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가수 MIRUSIA LOUWERSE 가 부름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성지(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11. 카파르나움 (0) | 2015.03.18 |
---|---|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10. 갈릴래아 (0) | 2015.03.06 |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0) | 2015.02.19 |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0) | 2015.02.08 |
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0) | 201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