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가장 많은 가르침과 치유 기적을 행하셨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이 회개하지 않자 탄식하시며 멸망을 예고하셨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카파르나움은 8세기에 큰 지진 피해를 입은 후 폐허가 됐다. 사진은 작은 형제회가 발굴해 놓은 카파르나움 마을 유적.
▨카파르나움
갈릴래아 호수 북서 연안의 어촌 카파르나움. 이름 그대로 마냥 머물고 싶은 평온한 마을이다. 카파르나움은 히브리말로 '위로의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는 기원전 150여년부터 서기 750여년까지 사람들이 생활했다.
원래 이 마을 이름은 '엘코스'였다. 이스라엘 12 소예언자 가운데 한 명인 나훔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를 존경한 마을 주민들이 '나훔 동네'란 뜻의 '크파르나훔' 즉 라틴말로 '카파르나움'으로 마을 이름을 바꿨다. 나훔이란 단어는 '위로'와'위안','아름다운'이란 뜻을 갖고 있다.
카파르나움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고대 국제 도로인 '바닷길'(Via Maris)이 나있던 제법 큰 고을(이사 8,23 참조)이었다. 요한 세례자를 참수한 헤로데 안티파스는 이 마을에서 교역상의 통행세뿐 아니라 갈릴래아 호수 어부들에게 물고기 세까지 받았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예수께서 세리 출신 마태오를 이곳 카파르나움에서 제자로 부르셨다(마태 9,9)고 추정한다.
복음서는 카파르나움을 '예수의 고을'(마태 9,1), '예수의 집이 있는 곳'(마르 2,1)이라 한다. 바로 예수님 공생활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2의 고향인 이곳에서 다른 그 어느 곳보다 기적을 많이 행하셨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소생(마르 5,35-43)시키셨고, 중풍병자(마르 2,1-12)와 고관의 아들을 치유(요한 4,46-53)하셨다.
기적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카파르나움 주민들이 회개하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크게 실망해 "너 카파르나움아!…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라며 탄식하셨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탄식대로 614년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봤고,746년 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이후 1200여 년 동안 무성한 들풀만 자라는 성경속의 안식처가 됐다.
작은 형제회에 의해 발굴된 오늘날 카파르나움 성지에는 예수님 체취를 느끼고 그분 안식처에서 믿음의 삶을 되돌아보며 말 그대로 위로를 받고자 하는 순례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예수님 시대 회당터 위에 4세기께 다시 새워진 유다인 회당. 예수께서는 이 회당에서 당신이 살아있는 빵임을 선언하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
▨카파르나움 회당
유다인은 매일 회당에서 "셔마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기도를 바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11,13; 민수 15,37-41)는 내용이다. 이 기도를 소리내어 바치는 것은 하느님 통치의 멍에를 짊어진다는 뜻이다. 이 기도는 단순히 말뿐인 기도가 아니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셔마 이스라엘"을 기도하신 후 율법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위로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이곳에서의 예수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내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22-59 참조)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요한 복음 머리글에 나오는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8)는 내용과 마지막 부분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는 내용을 연결시켜주는 핵심 단락이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대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우리는 이 빵을 먹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이 만남에서 주님은 당신을 '살로'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서, 또 그분이 걸어가신 그 길에서 그분과 동행이 되어 마침내 '영'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나자렛 예수」 1권 399쪽 참조) 하고 설명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마르 1,21-28; 루카 4,31-37),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는(마태 8,5-13; 루카 7,1-10; 요한 4,43-54) 등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의 은총이 살아 있는 이 회당은 카파르나움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회당 맨 아랫기단 검은색 현무암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초세기 당시 회당의 흔적이며, 지금 남아 있는 흰 석회석으로 지은 회당은 4~5세기 비잔틴 로마 시대 때 재건한 것이다. 규모는 길이 20m에 2층 높이로 돼 있고, 내부 구조는 동ㆍ서ㆍ북쪽에만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아 회중들이 자연스럽게 예루살렘이 있는 남쪽으로 향하도록 돼 있다.
▲ 최초 가정교회인 베드로 집터에는 초세기부터 많은 신자들이 몰려와 함께 기도했다. 사진은 베드로 집터 위에 팔각형 모양으로 현무암으로 지은 5세기께 성당 유적이다. 오른쪽 사진은 베드로의 집터 입구에 작은 형제회가 세워놓은 사도 베드로상. |
▨베드로의 집
베드로의 집은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약 30m 떨어져 있다. 예수님께서 열병에 걸린 시몬 베드로의 장모(마태 8,14-15)와 지붕을 뚫고 내려 보낸 중풍병자(마르 2,1-12)를 이곳에서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 자주 묵으셨다(마르 1,29-30. 2,1. 3,20-21; 요한 1,38-39. 2,12). 베드로의 집은 곧 예수님의 집이었다. 예수님 숨결과 채취뿐 아니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열정과 번뇌가 배 있는 집이다. 온 힘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지친 몸을 뉘었던 예수님의 안식처이다.
또 카파르나움의 베드로 집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도들 피난처였을 가능성이 크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해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준 장소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창설 초기부터 카파르나움에 살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집에 모여 함께 기도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사학자들은 베드르의 집을 최초의 '가정교회'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가정 교회는 로마 박해 때에도 지속됐다. 5세기 초엽 베드로의 집터에 팔각형 성당이 지어져 갈릴래아 지방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가 됐다. 이 성당 역시 카파르나움 고을과 함께 614년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이후 1894년 작은형제회에서 이 지역을 매입, 발굴하기 시작해 '베드로'라는 헬라어로 적혀진 푯말과 고깃배 그림을 찾아내 '베드로의 집터'임을 고고학적으로 확인했다.
현재 베드로의 집터에는 원래 집터가 파묻히지 않도록 큰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들어 올리는 공법으로 지은 팔각 모양의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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