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로 일군 쪽방촌 노숙자 ‘희망의 산실’
뜨끈뜨끈한 두부가 성형틀에서 나오자 손길이 바빠진다. 두부를 자르고 포장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포장 두부에 상표를 붙이는 것으로 두부 제조가 마무리되자 이번엔 시내로 배달에 나선다.
1970년에 지어져 건축학도들의 단골 순례지가 된 낡고 허름한 성요셉아파트. 서울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정문 오른쪽 골목에 있는 아파트 1층에 두부 공장이 있다. ‘한사랑 두부’다. 슈퍼마켓으로 쓰던 공간이라 39.67㎡로 비좁지만 한사랑 두부 가족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쪽방 수백 개를 거느린 ‘중림동 쪽방촌’에 둥지를 튼 노숙자들이 힘을 모아 운영하는 두부 공장이어서다. ‘희망의 산실’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두부 공장이 생긴 건 2013년 12월. 중림동 쪽방 공동체인 ‘한사랑 가족 공동체’(담당 윤석찬 신부)가 가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시설 관리인으로, 병원 청소부로 일하며 어렵게 살던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주자는 취지에서였다. 두세 달가량 무료로 쪽방을 쓰면서 정착 중이던 노숙자들,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 등이 두부 제조에 가세했다. 공장장은 두부 공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손 안셀모(46)씨가 맡았고, 대여섯 명이 힘을 합쳤다. 매주 수ㆍ목요일이면 어김없이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배달하고, 주말이면 교구 내 단체나 본당 주문량에 맞춰 매주 700∼800모를 생산 배달한다.
처음엔 작은 형제회가 서울 제기동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급식소 ‘프란치스코의 집’ 공간을 일부 빌려 시작했다.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늦게 급식이 끝난 뒤 식당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콩을 가는 마쇄기나 콩물을 끓이는 끓임통, 성형틀 등 기계도 수익이 생길 때마다 하나둘 구입해 위험 부담을 피했다. 그렇게 6개월을 시범 운영한 뒤 중림동 쪽방촌 인근 성요셉아파트로 옮겼다. 두부 비수기인 여름엔 두부와 함께 콩국수용 콩물도 생산했다. 생산팀에 4명, 배달팀에 4명이 고정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이러다 보니 한 달 매출도 1200∼1500만 원대에 이르렀다. 차츰 두부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후원자들도 늘고 본당이나 단체 주문도 늘었다. 물론 탈락자도 나왔다. 재활 의지가 없는 경우엔 과감하게 내보냈다. 이런 시행착오 끝에 공장도 점차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사랑 두부를 설립 운영해온 윤석찬(프란치스코) 신부는 “올 4월부터 강원도 양양에 있는 쉼터에서 오미자청을 만들어 두부와 함께 판매할 계획이고, 곰취 장아찌와 도토리묵도 생산 준비 중”이라며 “이같은 자활을 통해 고시원보다는 크지만 원룸보다는 작은 공동주택 50~100개를 건설해 노숙자들이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를 구현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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