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적으로 ‘지혜를 사랑함’이란 뜻을 지닌 철학(philosophia)은 예로부터 지혜(sophia)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정신(nous) 활동 가운데 최고의 것을 지혜라 불렀다. 그들에게 지혜는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는 참된 믿음 혹은 참된 인식을 갖게 하는 이론적 지식과 이를 근거로 하는 삶과 직접 관련된 실천적 덕목으로서 실천적 지식 모두를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믿음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 믿음이 진리 혹은 사실에 부합하지 못할 때 억견(臆見)이요 거짓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평소 행동하기에 앞서 그 믿음이 참인지 또는 바람직한지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은 바로 삶에서 참되고 바람직한 믿음의 근거를 찾는 사고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철학실천으로서 철학상담은 일상에서의 ‘철학함’(사변이 아닌 행동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명사가 아닌 동사를 사용)을 통해 이론 지식에 멈추지 않고,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철학은 세상을 둘러봄으로써 시작된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서 자연 안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 처음 마주하게 되는 생소한 것들을 파악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이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하는 고유한 인식 행위다.
우리의 인식은 개념적 사고에 기반한다. 개념을 뜻하는 독일어 베그리프(Begriff)가 ‘파악하다’를 뜻하는 동사 베그라이펜(begreifen)에서 유래한 데서 보듯이, 주변의 것을 파악하고 잡는다(장악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개념이 없다는 것은 곧바로 인식과 이해가 불가하며, 주변의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의 차원을 넘어서 주변을 이해하고, 주변을 파악하고 장악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자기를 위치시킴을 말한다. 철학함은 일종의 ‘세계에 거주함’이라 할 수 있다.
거주는 세계를 갖는 것이요, 바로 거기서 관습과 습관(habitus)이 형성된다. 이는 모두 우리의 인식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의 기본 요소는 다름 아닌 개념과 관념과 이념들이다. 이것들은 세계 안에서의 사물과의 관계 맺음과 사물의 정위(定位), 가치와 의미 부여 같은 인식에 기반한다. 우리가 평소 갖고 있는 세계관은 이런 것들의 종합적 틀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이런 요소들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이들에 익숙하게 될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철학함이라는 고유의 본성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다. 철학함이 없는 삶은 쉽게 고착화돼 생명력을 잃기 십상이다. 사고의 경직으로 주위와 단절되며 관계가 왜곡되고, 그 배타성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에 봉착할 뿐만 아니라 한계에 부딪혀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일상성에 빠져 자기 존재를 돌보지 못하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이런 일상성이 인간 삶의 평균성이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때 자기 본래성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존재로 있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경직된 삶 속에서 자기 해방과 변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철학함’이 요구된다.
'영성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0) | 2025.01.04 |
---|---|
주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해 영원한 생명 얻는 세례 (0) | 2025.01.04 |
성령의 은총 속에 성숙한 신앙인으로 이끄는 견진 (0) | 2025.01.04 |
동행하는 하느님 사랑과 희망 (0) | 2025.01.04 |
우리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희망의 순례자들 (0) | 2025.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