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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전쟁으로 실종된 이들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가야죠”

참 빛 사랑 2024. 9. 23. 18:03
 
 
진주현 박사는 “뼈는 전쟁사뿐 아니라 가족과 개인사까지 들려준다”며 “모든 것이 깊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뼈는 전쟁의 흔적인 동시에 평화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본인 제공

미 국방부서 실종 군인 유해 발굴 업무
카폰 신부 유해 하와이서 극적 발견

유해 전달받기 위해 2018년 방북
미군 93구·한국군 88구 신원 확인
실종자 5300명 북에 있을 것으로 추정
북미관계 악화로 발굴 중단돼 아쉬워



뼈는 전쟁 흔적이자 평화의 메시지

갈 곳 없는 유해 유엔묘지 안장 어떨지

2021년 3월 ‘한국전의 성인’이라 불리는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됐다. 이를 밝혀낸 사람은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일하는 진주현(소피아) 박사다. 카폰 신부의 유해를 찾아내기까지 전역을 앞둔 한 해병대 대령의 간곡한 부탁, 그리고 드라마틱한 확인 과정이 있었다. 그의 일은 전쟁에서 실종된 군인의 유골을 찾아 신원을 확인한 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2018년에는 북한에 들어가 미군 실종자 유해 상자 55개를 받아온 뒤 수많은 미군과 한국군 신원을 확인해냈다. ‘뼈는 곧 평화의 메시지’라는 진 박사를 전화로 만났다.



해병대 대령의 간곡한 호소와 극적으로 확인한 카폰 신부 유해

2018년 전역을 앞두고 있던 해병대 대령 마이클 겐(Michael gann)이 찾아왔다. 그는 “카폰 신부를 꼭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대령은 자신이 카폰 신부와 마찬가지로 캔자스주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고향에서 카폰은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그를 기리는 순례 행사도 열린다고요. 그러면서 이 분을 찾게 되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 일러줬죠. 저는 평소 유해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 이런 부탁을 잘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겐 대령의 말은 특별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군 기록에는 카폰 신부가 평안도에서 실종된 것으로 돼 있었고, 포로수용소에서의 기록은 없어 그의 흔적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그해 여름 하와이 펀치볼 국립묘지에 묻힌 무명용사 867기 개장 허가가 났다. 그리고 3년 후인 2021년 2월 특별히 눈에 띄는 유해가 발견됐다.

“키와 나이·성별·사망 이유 등을 분석하고 DNA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당시 한국전 참전자 나이는 평균 18~23세입니다. 그런데 그 유해는 30세가 넘은 것으로 보였고, 키도 상당히 컸습니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해는 이미 방부 처리됐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 성공 확률이 50%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유사한 사람 여러 명을 제시해 대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전 실종자 데이터베이스에 '딱 한 사람이 맞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로 카폰 신부였습니다. 뛸 듯이 기뻤죠.”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카폰 신부에게 최고 영예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한 바 있고, 연방의회도 유해 발견 여부에 대해 문의하는 등 관심이 큰 사안이었다. 보안을 철저히 지켜야 했다. 진 박사의 상사는 “최종 신원 확인 절차가 끝나기 전에 소문이 나면 안 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진 박사는 추가 확인에 나섰다. “당시 미군은 입대 신체검사 때 결핵 등 질환 여부를 보기 위해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여기서 찍힌 쇄골을 비교하면 신원이 확인됩니다. 오래되어 손상이 심한 카폰 신부의 엑스레이 사진을 전문업체를 통해 복구했죠. 이를 유해와 비교하니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또 치과 기록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했죠.”

2021년 3월 3일 미 국방부는 1951년 한국전에서 실종된 육군 대위 카폰 신부의 유해를 찾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그의 지위는 작전 중 실종자에서 전사자가 됐다. 존 휘틀리 육군장관 대행은 성명을 통해 “카폰 신부의 영웅적 행동과 불굴의 정신은 용기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우리 군의 가치를 나타내는 본보기”라고 밝혔다.


 
진주현 박사가 찾아낸 카폰 신부 유해가 70년 만에 고향인 캔자스로 돌아가고 있다. 출처=미 육군

펀치볼 국립 태평양 기념 묘지 무명용사의 무덤 앞 진주현 박사. 본인 제공

한국전 참전자 후손인 해병대원에게 브리핑하고 있는 진주현 박사.
출처=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 페이스북



6·25전쟁 흥남철수 피란민의 손녀, 북한에서 한국전 사망 미군 유해 인수

진 박사는 2018년 한국전 참전 미군의 유해를 전달받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이른바 ‘K55 프로젝트’.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미북정상회담 후속조치로 북한이 55개 상자에 담아 송환하는 미군 유해를 감식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진 박사는 7월 말 미군 수송기를 타고 북한 원산에 도착해 유해를 직접 인수했다.

“평안도 출신인 저희 할아버지가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 때 남으로 내려와 여수 피란촌을 거쳐 서울에 정착하셨죠. 그 밑에서 자란 손녀인 제가 미 공무원이 되어 다시 북한을 방문한다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원산에 도착했을 때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엔 의례적인 말만 하던 북한 사람들에게 저희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니 이내 ‘어디 출신이냐’며 굉장히 반가워했습니다.”

유해를 대할 때 예를 갖추는 자세는 남북이 비슷하다며 진 박사는 당시 일화 하나를 전했다. “대한민국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유해를 발굴하면 한지로 일일이 포장하고 상자를 태극기로 감싸는 예를 갖춥니다. 반면 미국은 실용적으로 접근해 유해를 담을 빈 상자만 보냅니다. 그래서 당시 북한에 유해 넣을 상자를 보냈더니 ‘왜 비어 있느냐’며 굉장히 의아해했습니다. 우리 예법이나 정서에 맞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제가 유해 넣을 때 상자를 채울 뽁뽁이(충전재)를 급하게 구해 보냈죠.”

그때 인수한 유해 가운데 현재까지 미군 93구·한국군 88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진 박사는 현재 남북 및 북미 관계 악화로 북한에 있는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국전 미군 전사자는 3만 6000여 명이고, 그중 실종자가 현재 7491명입니다. 저희 추산으로는 5300명 정도가 북한에, 1000명 정도는 휴전선 인근 DMZ(비무장지대)에 있습니다. 남북 관계가 하루빨리 개선돼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 오길 고대합니다.”



신원 확인하고도 갈 곳 찾지 못하는 경우도

진 박사의 일은 유해를 발굴해 신원을 확인한 뒤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 등 500여 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2021년에는 한국전에서 숨진 한국인 전사자 147명의 유해가 그의 손을 거쳐 고국 땅을 찾았다. 지난해부터는 14개 팀을 책임지는 매니저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종된 미군 8만 3000여 명의 귀환을 맡고 있다.

“어디 있는지도 몰랐을 먼 나라에 가서 목숨을 잃고 집에도 못 간 무명의 미군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저의 일입니다. 저희 건물에 들어오면 정중앙에 성조기가 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가 만약 살아서 일어나면 바로 성조기를 볼 수 있도록 배치합니다. 그 후 이곳을 떠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하지만 어렵게 신원을 확인하고도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의 나이는 대부분 10~20대 초반으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부모들은 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이미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들도 대부분 죽었거나 80세가 넘은 고령자입니다. 카폰 신부같이 귀환을 환영받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습니다. 만약 미국 내에서 유해 인수를 원하지 않으면 유엔군 참전 용사처럼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진 박사는 “뼈는 평화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뼈는 전쟁사뿐 아니라 가족과 개인사까지 들려줍니다. 모든 것이 깊은 인연으로 연결된 것이죠. 그래서 뼈는 전쟁의 흔적인 동시에 평화의 메시지가 되는 겁니다.”



▶ 진주현 박사는

1978년 서울 출생.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미 스탠퍼드대에서 인류학 석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저서로 「뼈가 들려준 이야기」, 「발굴하는 직업」이 있다. 남편 크리스토퍼 배(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