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만찬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피’의 잔을 나눠 마셨고, ‘그리스도의 몸’의 빵을 나누어 먹었습니다.(1코린 10,16 참고)
오늘 복음은 그러한 성체성사의 신비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도 그분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신비이지만, 그 신비를 받아들여 믿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일상을 돌이켜 보면 성체성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식사는 연명을 위한 영양섭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들과의 친교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식사에 초대하는 것은 서로 이해와 친교를 더 두텁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양한 교우들과 식사를 함께 했던 것은 본당 사목자로서 주요한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그저 만나서 먹고 마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좀더 알고 가까워지는 이해와 친교의 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셨다는 대목을 복음서 여러 곳에서 보게 됩니다. 당신의 제자들, 그리고 굶주린 백성들과도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심지어 일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신랄한 비난에도 세리·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비판했던 이들이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마태 11,19)이라고 놀려댔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한 식사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에서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며 음식을 나누는 이들과 친교와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과의 친교와 참석자들 상호 간의 인간적 친교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상징이며, 실제로 그것은 친교를 이루는 힘을 지닌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입니다.(요한 6,55 참고) 그래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라는 오늘의 말씀이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게 되면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해서 지금, 이곳에서 누리게 되는 것은 예수님과의 친교와 일치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가 그분과 한 마음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힘으로 사셨던 것과 같이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도 예수님과의 친교와 일치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셨습니다. 마침내는 당신의 살과 피까지도 우리가 먹고 마실 양식과 음료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충분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거저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 값없이 자신을 내어놓으신 그분의 자비 때문입니다. 매일의 미사를 통해 생명의 양식을 우리에게 건네시는 예수님께 깊이 감사드립시다.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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