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내면의 아이를 살펴보고 부족하고 못난 내면의 아이와
화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CNS 자료사진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수도자로서 제대로 살고는 있나?’ ‘오랜 세월 익숙한 수도생활이 타성에 젖어 안주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어딘가 떠나고 싶어진다. 멀고 낯선 오지라도 나를 던지고 싶다. 아마도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마샤 그래드의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가 생각났다. 나에게 인상 깊게 남은 내용은 대략 이렇다.
공주는 엄격하고 규범적인 왕실에서 체면을 중히 여기는 환경에서 자란다. 그런데 내면의 아이, 비키는 요란스럽고 시끄럽다. 비키가 나타날 때마다 공주답지 못하다며 야단을 맞는 공주는 결국 비키를 옷장 속에 가둬둔다. 그러다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이상적인 왕자를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공주는 왕자 내면의 못된 아이, 하이드와 만나게 된다. 어릴 적 자신의 내면 아이인 비키와 투쟁하면서 겪었던 갈등과 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결국 공주는 왕자 곁을 떠나 멀고도 위험한 진실의 길로 들어선다.
여행길에서 공주는 남의 지도를 보다가 길을 잃은 많은 여행객을 만난다. 자신 안에 있는 아름다운 나비를 보지 못하고 외모가 흉측하다며 얼굴을 감추는 쐐기벌레, 배나무밭에 있으면서 사과가 열렸다며 당황하는 사과나무, 물속의 물고기가 물에 빠져 죽을까 봐 한 마리씩 건져 나무 위에 올려놓는 원숭이, 그리고 안갯속에서도 쾌청한 날씨에도 똑같이 앞을 못 보는 사물들을 만난다. 저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세상이다. 마침내 공주는 깨달음을 얻는다. 있는 그대로 행동했던 내면의 아이 비키를 구박하고 옷장 속에 가두면서부터 행복과 멀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부족하고 한계가 많은 내면의 아이, 비키와 화해하게 된다. 동화는 공주가 비키를 진심으로 품고 사랑하면서 행복은 찾아왔고 그 행복은 다름 아닌 선택이었다고 말해준다.
나 역시 공주처럼 익숙하고 안전한 세상 밖으로 나와 수녀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고 행복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수녀원의 거룩한 전례와 아름답고 추상적인 언어에 익숙해져서일까? 내 내면의 아이가 다 자랐다고 착각을 한 탓일까? 게으르고 나태한 내면의 아이를 보고 싶지 않아 일부러 외면해서일까? 너무도 오랜 시간 내 내면의 아이를 잃고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누군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수녀님, 저는 어떤 문제로 힘들어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냥 평화롭고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사랑하니까. 그게 나의 진심이라고 믿었고요. 그런데 요즘 왠지 슬퍼지고 혼란스러워요. 사랑해서 참고 버텼는데…. 뭐가 문제죠?” 나는 무심코 “그렇게 하니 마음이 평화로웠던가요?” 묻자, 그의 커다란 눈망울에 가득 차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차갑게 한마디 툭 던졌다. “아뇨. 화가 났어요.”
동화 속 공주도 그랬다. 힘들어도 아닌 것 같아도 그래도 사랑인 듯했었다. 그때 진리의 길을 알려준 박사는 공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다는 느낌보다 아프다는 느낌이 더 많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 나 역시 사랑이 아니라서 행복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아팠구나.’
성찰하기
1. 자신을 믿어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평화와 기쁨 충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2. 부족하고 못난 내 내면의 아이와 화해하고 사랑해주세요. 행복은 내면 아이의 품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3. 좋다는 느낌보다 싫다는 느낌이, 행복하다는 느낌보다 불행하다는 느낌이, 기쁘다는 느낌보다 슬프다는 느낌이 더 많을 때, 멈춰 기도하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 하느님의 모상인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 맞아?”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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