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쁘면 그냥 많은 것이 용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음이 망가져 바쁨으로 회피했던 것들을 돌볼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CNS 자료사진
K는 딸이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너무 바빠서 얼굴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어쩌다 전화라도 하면 날아오는 메시지가 “엄마, 왜? 나 바쁜 거 몰라~” 하면서 연락도 하지 말란다.
누군가 “속상하셨겠네요”라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뇨. 바쁘면 그럴 수도 있죠” 하면서 오히려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딸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바쁨’으로 딸의 신경질적인 무례함이 용서되는가 보다.
누구는 “의사가 운동하라는데 도무지 운동할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하듯 말한다. 누구는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을 잊고 나서는 “아휴~ 요즘 바빠서 정신이 없어요!” 하면서 목소리 톤을 높여 말한다. 또 누구는 회의 시간에 늦게 와서는 “죄송합니다”가 아닌 “정말 몸이 두 개라도 안 되겠어요” 하는데 오히려 그 말투에 당당함까지 배어 있다.
주변 사람에게 짜증 내고 불평하면서 “내가 요즘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그래요” 하면서 이해해 달라고 한다. 바빠서 힘들고 고단하고 스트레스가 쌓여 신경질을 내는 것이니 양해해 달란다. 나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고는 “내가 요즘 상황이 그래…” 하면서 이해하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바쁠까? 아니, 왜 바빠야만 할까? 운동 못 해서 아픈 것도, 중요한 것을 챙기지 못한 것도, 약속 시각에 늦는 것도 왜 다 ‘바쁨’으로 용서가 되어야 하는 걸까?
언젠가 한 지인이 “수녀님, 차 대접하고 싶어요. 오셔서 이야기 좀 해요”라고 하는데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네. 그곳에 갈 일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갈 일 있으면…” 뭐야. 이제 ‘일’이 있어야 사람도 만나는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한 적이 있다. 나는 진짜 차 한 잔 마시면서 사람을 만날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 아니면 바쁘다는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빠서 고달프다고 느낄 때, 분주해서 초조하고 불안할 때, 너무 일이 많아서 사람을 만나 차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다고 느껴질 때, 바빠서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고 불평을 할 때 어쩌면 나는 일로 무엇을 내세우려다 오히려 나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이 나의 존재감을 높여준다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멈춤과 쉼, 느긋함과 여유가 ‘나태함’이나 ‘게으름’이라는 편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새 건물에 입주하고 나서 많은 하자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하자들을 거의 매일 발견하면서 마음이 다 망가져 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공사다망하시죠?”라는 우스갯소리로 인사말을 건네 왔다. 생각해보니 ‘공사다망’(公私多忙)에서 이 ‘망’(忙)이란 것이 마음(心)이 망(亡)했다는 뜻이 아닌가? 바쁘면 마음이 망가지나 보다. 하지만 사실 ‘바쁨’ 그 자체가 내 마음을 망가지게 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내 마음 안에는 건축으로 인한 이런저런 불편한 감정들이 있다. 그 감정이 보기 싫고 외면하고 싶어서 더 분주하게 나를 몰아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바쁘면 잊으니까. 바쁘면 다른 것 안 봐도 되니까. 바쁘면 그냥 많은 것이 용서될 거 같으니까. 그래서 그냥 바쁘고 싶었는지도.
그래,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망가져 바쁨으로 회피했던 그 마음을 돌볼 ‘멈춤’의 시간이 필요했다.
성찰하기
1. 짜증과 불안이 높아질 때 ‘멈춤’과 ‘쉼’의 시간을 ‘홀로’ 보내요. 그리고 바라봐요. 성당 안의 감실을, 혹은 정원의 꽃 한 송이를.
2. 바라보면서 눈을 편하게 쉬게 해줘요. ‘바라봄’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머무르게 해주니까요.
3. 불안은 ‘현재’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우리의 주님은 ‘현재’에 계시거든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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