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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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70)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순간.

참 빛 사랑 2019. 6. 26. 21:46





▲ 믿고 신뢰한 만큼 그리고 사랑하고 기대한 그만큼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이 배신감이 된다. 

  CNS 자료 사진




 C는 오랫동안 아내 없이 혼자 아들을 키워왔다. 다행히도 아들은 순하고 성실하게 잘 커 주었고 대학 졸업 후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런 아들이 대견했고 그런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C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아들이 밤늦게 술을 마시고 휘청거리며 들어와서 자기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었다고 했다. 그러자 아들이 두 눈을 똑바로 치켜들고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뭐 있다고 그렇게 화를 내세요? 말해보시라고요!”라며 소리를 지르더라는 것이었다. 아들의 분노에 찬 번뜩이는 눈빛에 충격을 받은 그는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아들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며 살아온 세월이 캄캄한 암흑 속에 내던져버려진 것 같아요.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면서 그는 이런 것이 바로 ‘배신’인지를 물어왔다. 숱한 세월 동안 쌓아왔을 부자간의 애틋한 사랑과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아 보였다.

“기대가 너무 확고하면 그 기대만 보이고 다른 것은 전혀 볼 수가 없다”는 포스트만(N. Postman)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C가 말하는 이 배신이란 것이 자신의 기대감을 고스란히 반사해서 비춰주는 거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믿었던 사람이 나에 대해 험담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 때, 아낌없이 내어주고 베풀어주었던 그 사람이 나에게서 받은 것이 없다며 원망할 때, 어릴 적 함께 자라면서 콩 한 톨도 나눌 정도로 우애가 깊었던 형제가 부모의 유산 몇 푼을 더 받으려고 매몰차게 돌아설 때, “사랑한다”고 수도 없이 고백했던 연인이 다른 연인이 생겼다며 냉정하게 떠날 때, 진실이라고 믿었던 우정과 사랑의 끈이 한순간에 잘리고 매정하게 길바닥에 내팽개쳐졌을 그때, 우리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믿고 신뢰한 만큼 그리고 사랑하고 기대한 그만큼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이 배신감이 아닐까 싶다.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뭡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과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C는 아들과 함께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들은 엄마가 그리웠던 거다. 너무도 그리웠지만 고생하며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를 위해 참고 견디며 살아왔었다. 어릴 적 학교 정문에서 같이 나오던 친구가 기다리던 어머니에게 달려가 “엄마!” 하며 품에 안기던 모습을 바라볼 때나 거리에서 아이와 엄마가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마주할 때면 불쑥불쑥 올라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억제할 길 없어서 홀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었단다. 결국, 그리움이 슬픔이 되고 분노가 되어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함께 잘 살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나를 낳았는지’ 그 책임을 묻고 따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켜켜이 쌓였던 억압과 원망이 술로 인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C는 “당장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아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의 원망과 고통이 아버지의 가슴으로 내려가 뜨거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기대감을 살짝 내려놓기까지는.



성찰하기

1. 배신감을 가지고 있나요? 혹시 나의 기대와 확신이 너무 큰 것은 아닐까요?

2. 상대에 대한 판단과 미움에 집중하기보다 단지 내가 그에게 했던 기대감에 집중해봐요.

3. 그 기대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종이 위에 적어요. 그리고 성모상 발아래에 놓고 기대감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